농사꾼 송씨가 초저녁에 소를 끌고 귀가하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송씨는 겁에 질렸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그러자 충성심이 강한 소가 호랑이와 맞서 사력을 다해 싸워 이겼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들은 옛날이야기다. 실제로 소가 호랑이를 이길 수 있는 지는 모르겠다. 또 그것은 중요하지도 않다. 주인을 지키기 위해 소는 반드시 호랑이를 이겨야만 했고, 주인은 혼자 살겠다고 소를 두고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만약 주인이 도망쳤다면 의욕을 잃은 소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월 수입 200만원 이하의 19~65세 저소득층 남녀 631명을 조사한 결과,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사람이 절반 가량(49.1%)에 달했다. 또 응답자 10명중 7명은 10년 뒤의 한국사회는 '잘사는 사람은 더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살것 같다'(63.5%)거나 '모든 계층이 지금보다 힘들어질 것 같다'(10.3%)는 반응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경쟁에서 뒤처진 젊은이들이 아예 신분 상승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며 스스로 하류층으로 사는 길을 선택한 일본형 침체병이 한국사회에도 옮아붙기 시작했다는 증험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잃어버린 20년'의 중병을 앓고 있는 일본은 의욕상실 현상이 심화돼 사회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중산층이 급격히 붕괴되면서 희망의 불빛이 희미해진 것은 사실이다.

아무런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가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의미있는 경제성장을 일구어낸 것은 정부의 효율적이고 헌신적인 정책 실행과 의지, 높은 교육 수준, 양질의 노동력, 놀라울 정도로 탁월난 기업가정신···등을 꼽을 수있지만, 무엇보다도 '하면 된다'는 국민적 신념에서 비롯됐다.

IMF사태 때도 금(金)모으기 행렬이 세계인을 놀라게했는데 이는 '어떠한 절망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한국인들의 결집력,절제,불굴의 의지를 엿볼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랬던 한국인들의 숨소리가 약해진 것은 슬픈 일이다.

전 정권에서 가진자와 못가진자를 편가르기 하며 가진자에게는 죄의식을 강요했고 못가진 자에게는 패배의식과 분노를 부추기다 보니 정치적인 목적은 달성했을지 몰라도 미래세대인 아이들의 롤모델(role model)을 잃게했다. 요즘엔 청년실업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자신감을 잃어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 부부들마저 늘면서 희망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미국이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회의 나라'라는 모토(motto)가 주효했기 때문이다. 노력을 하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또 그런 여건이 되는 나라여야만 힘을 가질 수가 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만 사력을 다할게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롤모델을 줄 수 있는 제도적,정신적 틀을 만들어주어야한다. 우리는 아직 희망을 접기에는 너무나 할 일이 많고, 기회도 많은 나라다.

깊어가는 이 가을, 삶의 시름을 접고 아름다운 시(詩) 한편 감상해보시라. 그리고 희망의 밭을 갈아보면 어떨까···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시인>

남으로 창을 내겠소/밭이 한참 갈이/괭이로 파고/호미론 풀을 매지요//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왜 사냐건/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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