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박찬영 편집국장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성인들이 사는 이상국가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김영란법’은 시대의 가치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지고지순한 가치만이 지배하는 세상은 없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정의와 불의가 뒤섞인 가치혼란의 진흙탕이다. 김영란법 도입 찬ㆍ반의 핵심 논리도 정의와 불의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었다. 교과서엔 정의와 불의 간의 균형점이 없지만 현실에는 있다. 그리고 이 균형점이 우리사회의 지력이기도 하다.

결국 합헌 결정이 났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은 뇌물과 접대의 구분을 명확히 그은 ‘우리시대 가치의 잣대’다. 논란은 있었지만 언론인, 사립교원 등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도 마련됐다.

여기서 김영란법 논란에 대한 ‘복기’를 해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세월호 침몰, 사드 배치 등 우리사회는 논란의 홍수 속에 살아왔고 앞으로도 수많은 이슈들이 터져 나오기 때문에 김영란법 도입의 처음과 끝을 샅샅히 검토해야 한다. 이 복기를 토대로 새로운 해법을 찾는 다면 김영란법의 가치는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정한 것이 현실을 무시한 과도한 규제여부다. 선진국의 반부패 법령에 따른 규제 금액에 비하면 결코 과하지 않다. 독일은 공직자가 우리 돈으로 1만5000원 이상의 금품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미국도 20달러 이상의 선물을 금하고 있다. 스웨덴의 공직자는 신용카드 영수증을 평생 보관하고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스웨덴의 한 국회의원이 우리나라의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식사 대접을 받았는데 해외출장비에서 그 식사비를 반납해야 했다. 대한민국 국민 기준으로 절대로 과한 규제가 아니다.

둘째는 김영란법에 의한 경기 위축 주장이다. 일부에선 6조원 경제 손실 효과까지 내세운다. 또 기업 접대비 10%만 줄어도 연간으로 9300억여원이 감소한다고 외친다. 이 숫자가 믿을 만한 근거로 산출된 예측일까? 특히 농축수산물 피해는 과장 된 측면이 많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축수산물 수요가 최대 6조5000억원(선물 2조3000억원, 음식점 4조2000억원) 감소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아무리 농어민을 보호하는 부처지만 김영란법만 시행되면 농어민들은 큰 타격을 입을 것 같은 ‘죽는 소리’를 한다.

국민권익위원회나 일부 농민 단체 의견은 다르다. 권익위가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에 발주한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대표적인 피해 업종이라고 알려진 화훼산업에 대해서 충격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선물 수요도 많아야 0.86% 정도가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 친 경제단체 성격의 현대경제연구소 보고서에서도 내수 축소는 과장 됐다고 말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가톨릭농민회(가농) 등 농민단체들은 “김영란법을 무력화시키려고 농민을 이용하지 말라”며 6월 29일 성명서를 배포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은 “김영란법 때문에 농가가 몰락한다는 보도는 거짓말이고 사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의장은 “일부에서는 손해를 보는 농가도 있을 수 있지만 5만원 넘는 소고기를 선물하지 못한다 해서 한국농업이 망하거나 흥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 주장처럼 정말로 1년에 9조원이 넘는 엄청난 접대비가 사실이라면 김영란법 정당성의 근거는 더욱 확고하다. 어떤 사회든 부패를 윤활유로 성장할 수 없다. 성장처럼 보여도 부패의 찌꺼기는 결국 성장의 엔진에 부담을 주게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2년 ‘부패와 경제성장’ 보고서에서 한국의 청렴도가 OECD 평균만 돼도 연간 GDP 성장률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995∼2010년 국제투명성기구(TI)는 GDP가 1% 오를 때 1인당 명목 GDP는 연평균 0.029%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DI도 2009년 미국의 리스크 분석기관 PRS그룹의 ‘ICRG’ 지수를 환산해 발표했다. 청렴지수가 1.2만큼 개선되면 한국의 국가브랜드 점수가 5.2점, 국가경쟁력 점수가 0.29 각각 상승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김영란법이 시행 되면 내수위축이 아니라 부정부패가 줄어서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 하나의 관점은 사회 정의 문제다. 지금 우리사회는 김영란법 앞에 진보, 보수도 없고 여야도 없다. 정치권만 봐도 그렇다. 여야 의원 13명은 6월 29일 국내산 농축수산물과 그 가공품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걸핏하면 좌우로 갈라져 대립해온 그들의 일치단결에 의아할 뿐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농ㆍ축산물 시장 등 내수위축을 들고 나오지만 본인들이 적용 대상에 포함 돼 오해하기 좋은 빌미만 주고 있다.

사회 정의의 기초가 되는 도덕의 본질은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서로에 대한 행위를 강제력이 아닌 자각에 의한 규범이다. 이번 헌재 합헌 결정은 식사 대접 3만원의 당위성을 제공한 것이다. 김영란법은 썩어가는 사회에 겨우 따끔한 ‘주사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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