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박찬영 편집국장

 

내년 400조원이 넘는 슈퍼예산안이 국가 성장판을 열기보다 2017년 대선을 앞둔 ‘표(票)퓰리즘’ 냄새가 난다.

정부는 SOC나 연구개발 등 경제 성장의 활력이 되는 예산은 졸라매고 친 서민적 복지예산에 치중하고 있다. 내년 보건. 복지와 고용 관련 예산은 전년보다 5.3% 늘어난 130조원이다. 나라 살림 3분의1 가량을 복지에 쓰겠다고 한다. 국방에는 올해보다 4% 증가한 40조3000억원이 배정됐고, 교육도 6.1%가 늘어난 56조4000억원이 책정됐다.

전부 경제성장과 직접적인 관계가 적은 돈이다. 반면에 경기부양 기여도가 높은 SOC 예산은 2조원 가량 줄었고, R&D예산은 올해보다 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야당의 친서민 정책에 맞서 경제 성장보다 국민들 피부에 와 닫는 인기영합 정책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40조원이 넘는 국방예산 속에도 표풀리즘이 보인다. 400억원을 들여 전국 3만709개 병영 생활관에 에어컨을 보급하고 이를 부담 없이 켤 수 있도록 전기료 50억원을 지원한다. 병사 봉급도 20만원 가까이 인상한다. 9만8000원(2012년 기준)을 받던 상병 월급이 내년에는 19만5000원으로 두 배가량 인상된다. 병사 급식비 단가도 올린다. 여기에 전방지역에서 복무하는 장병들이 면회. 외박용 휴양시설도 건립된다. 이것도 크게 보면 복지예산이고 60여만명의 군인들에게 선심을 얻을 수 있다.

지방 민심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내년 지방으로 내려가는 돈은 올해보다 7.4% 늘어날 전망이다. 지방교부세가 36조1000억원에서 40조6000억원으로 12.5%,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41조2000억원에서 45조9000억원으로 11.4% 증가한다. 장기흡연 중·고령자에게 무료로 폐암 검진을 해주는 사업도 내년 시범적으로 실시된다. 지원대상은 만 55세 이상 74세 이하 흡연자 중 담배를 하루 1갑씩 30년 이상을 피운 8000명이다. 이 사업에는 29억원이 투입된다.

문제는 정부가 복지예산을 늘려도 혜택이 크게 늘지 않는 것이다. 증액된 복지예산 명세를 보면, 수급자 증가에 따른 자연증가분이 상당액을 차지했다. 연금 등 공적연금 지출액 증가분(2조6936억원)을 제외하면 실제 증가분은 4조원에 불과하다. 복지 예산 증액분 7조1000억원의 40%에 육박한다. 고령화 현상에 따라 수급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지출액이 45조3998억원이나 된다. 여기에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급여 증가분 5385억원, 노인층 증가에 따른 기초연금 증가분 2269억원 등도 자연증가분으로 볼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 국고 지원은 오히려 6조8764억원으로 올해보다 2210억원이 줄었다.

반면에 경제를 살릴 돈이 빠듯하다. 400조원 중 지방자치단체로 이전 등 의무 지출액이 195조원이 넘는다. 저출산이나 수출촉진 등 정책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돈이 205조원으로 올해 예산보다 대략 1조원 좀 넘게 늘어난 정도다.

슈퍼예산이란 이름이 낯 뜨겁다. 400조원이 넘는 예산이라지만 증가율은 3.7%에 불과하다. 여기다 2017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가 1.5~2.0%인 것을 감안하면 실질 총지출 증가율은 1.7~2.2%에 머문다. 올해 추경이 통과되는 것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긴축 예산이다.

내년 예산안의 치명적 결함은 경제 활력을 위한 투자가 줄어든 것이다. 경제를 성장 시켜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을 올해보다 오히려 줄여놓고 내년 경제성장률을 4.1%로 보고 예산안을 짰다고 한다.

투자 대신 복지를 늘려놓고 경제성장을 한다는 이율배반적 예산이다. 글로벌 저성장시대에 성장 동력도 키우지 못하고 국가부채만 키우는 예산을 국회가 그대로 통과 시켜선 안된다. 야당도 표를 의식한 복지만 외칠 것이 아니다.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국가채무가 여당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야당의 자세가 여당을 변화 시킨다. 끝없는 포퓰리즘 대결의 종말은 미래세대 파국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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