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직구 한마디/손규미 기자

 

교보생명의 광화문글판이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길’ 문구로 옷을 갈아입었다.

‘광화문글판’이 광화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지만 기자에게는 특히 ‘광화문글판’과 관련한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있다.

어렵게 등단한 선배 문인이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저자 강연회를 열던 날, 이를 축하하기 위해 후배들과 교수님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술자리에서도 기분 좋게 다들 덕담을 나누고 있는데, 그날 따라 술에 취하신 교수님께서 별안간 “미안하다”는 얘기를 했다. 제자들의 앞날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신 것이다. 순간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고 그 누구도 교수님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언제부턴가 미안한 일이었다. 우리가 열성을 다하면 다할수록 좀 더 좋은 시를 쓰고 싶어할수록 현실은 더 큰 굴레가 돼 우리의 생계를 지속적으로 짓눌러 왔다.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광화문 거리를 거닐었다. 그리고 그날, 교보생명 사옥에 걸려 있는 ‘광화문글판’을 보았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걸려 있는 때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문구를 본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괜찮다고. 지금의 우리도 괜찮다고.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는 듯한 ‘광화문글판’의 시 구절로 인해 그 날 나는 많은 안도와 위안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도 시를 쓴다는 것은 여전히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웠던 대학시절, 우리에게는 모두 같은 목표가 있었다. ‘대산문학상’이었다. 대한민국의 문예창작학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타고 싶어하는 그 문학상 말이다.

수많은 작가를 배출하고 양성해낸 만큼 ‘대산문학상’은 작가의 등용문이자 습작생들의 꿈이기도 하다. 나 또한 그토록 열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학상을 주최하는 ‘대산문화재단’이 교보생명의 재단이라는 것을 이곳 홍보팀 직원분과의 만남을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

얼마전 교보생명의 신창재 회장이 시인들이 뽑은 ‘명예시인’으로 추대됐다.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시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신창재 회장은 ‘문학의 대중화’에도 앞장 선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보생명의 대산문화재단은 ‘대산문학상’을 비롯해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외국문학 번역지원, 국제문학포럼, 대산창작기금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광화문글판’을 통해서 어렵기만 했던 ‘시’와 일반 시민들과의 가교 역할 또한 충실히 해내고 있다.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를 운영하며 시민들의 ‘독서문화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기자 또한 광화문에 출입할 때마다 교보문고는 종종 들르곤 한다. 다른 서점에서는 외면받는 ‘시집’ 코너가 교보문고에는 비교적 잘 구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학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사양 산업으로 변모되고 있는 지금, 보험사임에도 불구하고 ‘문학 사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를 전공했던 당사자로써는 다행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바다.

교보생명이 올해에는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를 지원하는 여러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신창재 회장은 지난 인터뷰를 통해서도 가장 좋아하는 시로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별헤는 밤”을 꼽은 바 있다. 9일에는 교보생명이 ‘광화문글판 에세이 공모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기자는 어느덧 나이가 훌쩍 들어 대산문학상처럼 작품을 낼 수 있는 조건에 충족되지 못함이 아쉽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서는 대산문학상을 수혜받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골몰하는 습작생들이 자신의 청춘을 쏟아붓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인이 살고 있는 나라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시인이 살고 있는 나라임에도, 그들의 현실이 녹록치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문학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교보생명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도 이러한 순수 문학을 대중화 시키고자 노력하는 교보생명의 행보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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