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직구 한마디/손규미 기자

 

한파가 최고조에 이르던 어느날, 그 어떤 곳보다 찬 겨울을 나고 있는 천막을 찾았다.

별도의 난방시설 없이 휴대용 난로 등으로 추위를 나고 있던 그들은 처음 보는 내게 주섬주섬 귤과 추위로 반쯤 식은 커피를 건넸다. 사측의 불합리한 대우에 맞서 설계사들의 처우 개선을 부르짖고 있는 그들은 천막 농성 54일째로 접어든 현대라이프생명의 설계사 및 관계자들이다.

현대라이프생명은 현재 지속적인 경영 악화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개인영업을 접다시피 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초 2000명에 달하던 설계사 수는 현재 150여명으로 급감한 상태다.

현대라이프생명 소속 설계사들은 사측의 ‘갑질’이 불합리하게 작성된 위촉계약서로부터 나온다고 설명한다.

회사는 작년 10월부터 판매 수수료를 50% 삭감하겠다고 통보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해촉하겠다고 전달했다. 이와 함께 해촉 이후 잔여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회사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설계사들에게 지급된 정착지원금도 환수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회사의 사정으로 해촉된 대다수의 소속 설계사들은 잔여수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설계사들은 보험 계약을 체결하면 수당을 여러 차례 나눠 받는다. 또한 보험사들마다 영업 규정은 상이하지만 스스로 일을 그만두거나 해촉되면 유치한 계약의 잔여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받지 못한 잔여수당은 보험사의 몫으로 돌아간다.

설계사들은 이러한 불합리한 부분을 알면서도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영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해당 규정을 받아들인다.

문제는 보험사가 설계사를 해촉하는 이유가 분명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 사측의 판단에 의해 언제든지 해촉될 수 있는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한 설계사는 “최근 한 중소형사 생보사의 설계사가 해촉을 당했는데 알고 보니 그 이유가 고성 방가였다”고 설명했다.

현대라이프생명의 경우도 그 같은 예 중의 하나다. 소속 설계사들은 설계사의 개인 사정이 아닌 사측의 경영악화로 해촉됐음에도 잔여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해결 방안을 촉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현대라이프생명의 한 소속 설계사는 “회사의 계약 내용이 하도 자주 바뀌어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FP가 없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날 만난 관계자들은 저마다 영업 현장에서 있었던 좋은 시절의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연도대상을 탄 설계사도 있었고, 생보협회에서 인증하는 우수인증설계사 자격증을 내보이며 한 때 잘 나가던 지점에서 팀장으로 몸담았던 시절을 회상하던 관계자도 있었다.

그들에게 충분히 능력이 있음에도 왜 다른 곳으로 이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리가 불합리한 대우에 대해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면, 현대라이프생명과 비슷하게 점포 정리를 하고 있거나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여타 보험사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된다”면서 “이렇게 물러서면, 또 다시 제2의 현대라이프생명이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 때문에 다른 설계사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근 보험사들이 저마다 전속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 전략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생각한다.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단순 지원 정책보다 설계사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처우 문제의 개선이 우선시돼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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