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조사 결과...그룹 지배력 강화하거나 내부거래 규제 피하는 도구로 활용
이재용의 '삼성생명공익재단'. 정몽구의 '현대차정몽구재단'이 대표적 사례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공익법인 주식의 의결권 제한 등 제재 방안 포함키로

[금융경제신문= 김용주 기자] 대기업들이 사회적 공헌사업을 한다며 공익법인을 많게는 몇 개씩 갖고 있는 데 이 공익법인들이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내부거래 규제를 피하는 창구로 활용되는 것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드러났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정석인하학원 공익법인은 다수의 계열사로부터 45억원의 현금을 증여받은 뒤 다음 달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 5년간 배당 내역이 없는 회사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물산 주식 3000억원 가량을 매입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인해 발생한 신규 순환출자 지분을 공익법인 재산으로 매입한 것이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이후, 규제를 피하고자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은 총수 일가 지분이 많으면서 내부거래 비중도 높은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의 본인 지분 일부를 현대차정몽구재단에 출연했다. 그 결과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에 대한 지배력은 유지하면서 총수일가 지분율은 29.9로 낮추면서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일 공익법인이 총수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장이나 일감 몰아주기 등에 이용됐다고 의심되는 사례를 소개했다.

공정위가 공익 재단의 운영 실태 전수 조사에 나선 이유는 공익 재단이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공정위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대기업 공익법인은 총수 2세가 출자한 회사 등 기업집단 지배력과 관련된 회사의 주식을 집중 보유했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119개 계열사 중 57개사는 총수 2세도 지분을 보유한 회사였다. 공익법인이 해당 집단의 대표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현상도 51개 기업집단 중 31개 집단에서 나타났다.

각 공익법인들이 그룹의 핵심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세금은 내지 않고 있다.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법인은 5%까지 특정 회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 5% 초과분에 대해서는 증여세가 과세된다.

공정위 조사결과, 공익법인이 주식을 보유한 119개 계열사 중 112개의 주식에 대해서는 상증세 면제 혜택을 받고 있었다.

이들 공익법인은 총수 일가와의 내부거래에서도 이용되고 있었다. 2016년 기준 165개 공익법인 중 총수 관련자와 자금거래·주식 등 증권거래나 부동산 등 자산거래, 상품용역 거래 중 어느 하나라도 한 비율은 100개(60.6%)에 달했다.

165개 공익법인 중 총수나 친족, 계열사 임원이 이사로 참여하는 경우는 138개(83.6%)에 달했다. 동일인이나 친족, 계열사 임원이 공익법인의 대표인 경우도 98개(59.4%)로 집계됐다. 총수 일가가 대표자인 경우는 68개(41.2%)였다. 이들 공익법인은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때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공익 재단이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는 의혹이 사실로 나타나면서 관련 규제 논의도 활발해 질 전망이다.

국회에서는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보유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제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까운 일본의 사례를 보면, 일본은 이미 이해관계자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공익법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함과 동시에 공익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으로 계열사주식을 매입하거나 계열사와 거래하는 행위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도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이 공익증진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서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개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공익법인이 총수일가나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하는 경우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럼에도 공익법인과 동일인 관련자 간 내부거래에 대한 통제장치는 미흡한 실정"이라며 "현재 운영 중인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위에서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공익법인 주식의 의결권 제한 등 제재 방안도 포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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