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 "사모펀드 투자자에 대한 보호 강화하겠다"
"사모펀드 시장 활성화 위해 규제 완화해야 한다" 기존 입장에 변화
최근 여러 사태로 사모펀드 관련한 금융당국 정책 추진 동력 크게 꺾인 상황

 

[FE금융경제신문= 정성화 기자] 사모펀드 시장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던 금융위원회의 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11일 금융위에 따르면 은 위원장은 지난 10일 취임 한 달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사모펀드 투자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사모펀드 시장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에서 돌아선 것이다.

은 위원장은 후보자 시절 청문회에서 "제 평소소신은 (사모펀드 시장 활성화를 위해)규제를 완화해 주자는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그간 공공연하게 '규제완화'를 주장해 왔다.

뉴시스에 따르면 최근 조국 법무장관 일가의 투자 의혹,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손실 사태, 국내 최대 헤지펀드 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까지 연이어 불거지자, 사모펀드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정책 추진 동력도 사실상 크게 꺾인 상황이다. 

은 위원장은 "(금융위원장 취임 전)외부에서 볼 땐 자산운용을 금융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악재가 반복되다 보니 투자자보호 문제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관들이야 스스로 보호하고 검토해 투자하지만, 개인투자자들도 있다 보니 (사모펀드에 대한)입장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국감에서도 사모펀드 관련 제도의 허점을 꼬집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이번에 터진 DLF 사태의 경우 지난 2015년 정부가 내놓은 '사모펀드 활성화 대책'이 불씨가 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시 금융위는 사모펀드 운용사를 인가가 아닌 등록제로 전환하고, 사모펀드 투자 한도를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췄다. 또 사모펀드 설립 후 2주 내 사후 보고할 수 있게 하고, 펀드 내에서 부동산·증권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를 허용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낮아지자 전문투자자가 아닌 비교적 금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일반투자자들도 이 시장에 진입하게 됐고, 비이자 수익을 확대하려는 은행들도 고위험 파생형 사모펀드 판매에 열을 올리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최근 5년간 16개 시중은행의 증권형 파생상품 판매 현황 자료에 따르면 주가연계특정금전신탁(ELT)·파생결합증권신탁(DLT)·주가연계펀드(ELF)·파생결합증권펀드(DLF)의 판매 잔액은 지난 2015년 30조원대에서 올해 8월7일 49조8000억원대로 꾸준히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입 건수 역시 66만8000여건에서 100만건으로 껑충 뛰었다. 상품마다 구조가 다르지만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에 수익·손실 정도가 정해지는 구조로, 모두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다.

특히 이번 DLS 사태는 규제가 완화된 틈을 악용한 사례라는 주장도 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DLS 사태는 사실상 2015년 사모펀드 활성화에 전제된 규제완화 조치로 인해 발생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며 "사모펀드는 49인 이하 투자자들을 모집해야 하는데, 우리은행 상품의 경우 올해 3월부터 석달 동안 700여명의 투자자를 모집하면서 49인같은 상품을 19개 시리즈로 내놨다"고 지적했다.

또 "만약 사전 등록이었다면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같은 상품을 시리즈로 판매해 사모펀드의 안전장치를 무력화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금융위는 최근 개인 전문투자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요건과 절차까지 완화했다. 개인 전문투자자로 인정받기 위한 금융투자상품 잔고 기준이 기존 '5억원 이상'에서 '국공채·환매조건부채권(RP) 등 초저위험 상품을 제외한 5000만원 이상'으로 대폭 낮아졌다. 또 자산 기준도 '직전년도 소득액 1억원 또는 총자산 10억원 이상‘에서 ’직전년도 소득액 1억원(부부합산시 1억5000만원) 또는 5억원 이상(거주주택 제외 부부합산 순자산)'으로 완화됐다.

고위험 투자에 대한 감내능력이 있는 개인 전문투자자 수를 대폭 늘린다는 취지에서인데, 지금처럼 고위험 투자에 따른 각종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금융위도 사모펀드 관련 제도의 허점을 면밀하게 들여다 본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단 늦어도 11월 초까지 DLF와 관련한 제도 개선 방안이 나올 것인데 이는 금감원의 검사 결과가 토대가 될 것"이라며 "사모펀드와 관련한 제도 개선은 별도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1월 초 나오게 될 DLF관련 부분들은 아무래도 조금 강화하는 기조로 가게 될 것"이라며 "전반적인 사모펀드 제도는 DLF를 점검하면서 현재 파생결합증권의 설계부터 판매, 운용까지 전반적인 제도를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고 있는 단계로 현 시점에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지나친 규제 강화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만큼, 투자자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경제성장률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려면 벤처, 혁신기업들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이 계속 유지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사모펀드는 자금공급기능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데 투자자 보호가 강화되면 이러한 긍정적인 기능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따라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강화보다는 불완전판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향일 것"이라며 "또 투자자들이 충분히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하는 채널을 마련해 투자의사 결정을 내리기 전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방안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수 개월째 계류 중인 '사모펀드 활성화 법안(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도 국회 통과 여부가 더욱 불확실해졌다. 이 법안의 핵심은 법적으로 경영참여형(PEF)과 전문투자형(헤지펀드)으로 구분돼 있던 국내 사모펀드 운용규제를 하나로 합쳐 전체적인 규제 수준을 낮춘 것이다.

당초 여야를 막론하고 의견 차이가 크지 않았으나 최근 사모펀드와 관련된 구설수가 커지면서 국회 통과가 요원해 보인다. 이 법안은 지난해 11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해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지난 3월 상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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