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로부터 수억원 챙긴 '죄질 나쁜' 조 사장, 1심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 4년
장남 조 부회장은 업무상 횡령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구 한국타이어) 이사 선임 규정 '주목'
'범죄 전력자는 물론 범죄의 집행을 면제받는 자도 인사로 선임하지 않도록 규정'

[FE금융경제신문 = 김용오 편집인] 법원 판결에 '3.5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숫자 3은 '징역 3년' 5는 '집행유예 5년'을 뜻한다. 한국 재벌총수들이 법정에서 대부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실형을 면하는 현상을 가리켜 이런 말이 생겼다. 집행유예는 징역 3년 이하를 선고할 때만 가능하다.  일각에선 법원이 집행유예가 가능하도록 낮은 형량을 적용했다고 의심한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정찰제 판결'로 부른다. 재벌 총수나 일가들에는 '콩밥' 먹는 게 가장 두렵다. 집행유예는 사실상 자유의 몸이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가 했던 말이 정곡을 찌른다. "재벌 총수가 횡령이나 배임으로 기소되면 1심에서 5년을 선고합니다. 그러면 2심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서 3년으로 줄여줘요.  그 다음에는 그동안의 경제발전에 공헌 운운하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합니다.  우리 형법은 3년 이하의 형을 받으면 집행유예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처음에는 5년을 때려서 국민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2심에서는 집행유예,  대법원에서는 집행유예 확정!"

이런 '정찰제 판결'이 또 나왔다.  법원은 지난 5일 하청업체로부터 수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구 한국타이어)대표(48)에게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조 대표의 친형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대표이사 부회장(50)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재판장은 말했다. "죄질이 나쁘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조현범 대표는 하청업체로부터 납품을 대가로 매달 수백만원씩 모두 6억원가량을 챙기고, 계열사 자금 2억 6000여만원을 정기적으로 횡령한 혐의다.  조 대표는 지인의 매형 명의로 개설된 차명통장을 제공받는가 하면 하청업체나 관계사로부터 받은 돈을 유흥비로 사용하기 위해 고급주점 여종업원의 아버지 명의로 개설된 차명계좌를 주점 측으로부터 제공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친형 조현식 부회장은 친누나가 미국법인에 근무하는 것처럼 꾸며 1억여원의 인건비를 지급한 혐의(업무상 횡령)다.

조현범 대표는 지난해 11월 구속됐다. 구속 사유는 증거인멸 우려다.  당시 재계에서는 "금액이 크지 않으면 횡령이라고 해도 회사 일을 하다가 저지른 경우면 봐주는 경향이 있지만 이번 사건은 오로지 자신의 유흥비 지출 등 사적 이익만을 위했기에 봐줄 수가 없었던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파렴치한 범죄라는 의미다.

어쨌든 형제가 집행유예로 자유의 몸이 됐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마무리만 남겨 놓은 상황으로 알려진 한국타이어그룹의 3세 경영권 승계구도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 선임 규정이다. 범죄 전력자는 물론 범죄의 집행을 면제받는 자도 인사로 선임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장남 조 부회장, 차남 조 사장 모두 이 조항에 걸린다. '한국국타이어 후계구도는 헝클어지는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까닭이다.

지난 2017년 한국타이어그룹은 조양래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아들인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총괄부회장,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의 '형제경영 체제'를 갖췄다. 장남 조현식 부회장은 지난 1월 1일 그룹 정기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조양래 회장의 사임으로 단독 대표이사를 맡으며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섰다.

조 부회장이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총괄부회장으로 승진해 직급상으로 동생 조현범 사장보다 우위에 서 있지만, 재계 일각에선 이들의 '형제경영'이 향후 후계구도와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돼 '롯데그룹 형제의 난'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한국타이어의 지배구조상 두 형제는 여전히 경쟁 관계에 있다. 한국타이어 지주사격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경우 조현식 부회장이 19.32%, 조현범 사장이 19.31%를 갖고 있다. 사실상 별 차이 없다. '박빙'이다.

3세 승계를 위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조양래 회장이 이사직을 내려놓고, 사명까지 변경해 승계 마무리 단계인 지분승계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결국 아버지 조양래 회장의 의중에 따라 차기 회장이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조 회장은 일선 경영에서는 손을 뗐지만 회장실로 출근하는 등 그룹 경영에 큰 영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 회장은 그룹 회장직과 등기임원직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조현범 사장의 구속과 집행유예 선고가 한국타이어그룹 3세 승계 경영권 향방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장남 조 부회장, 동생 조 사장 형제 모두 3세 경영 마무리 단계에서 도덕성에 흠집이 난 것은 물론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및 오너일가 전반에 대한 추가 혐의가 더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진행하다 범죄 혐의를 포착하고 범칙조사로 전환했고, 이후 국세청의 고발에 의해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고발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 대표의 개인비리 혐의를 인지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 등의 논란도 끊이지 않았던 만큼, 혐의가 추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결국 향후 한국타이어그룹 경영권을 놓고 '형제의 난'이 벌어질 수도 있는 지뢰가 곳곳에 깔려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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