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결국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 "불확실성 너무 크다"
이스타항공, 매각 작업 실패에 청산 절차 돌입예상
M&A무산에 법정공방 불가피...1600명 실직 현실로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한 제주항공이 '주식 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23일 공시했다. 텅 빈 이스타항공 사무실(사진=뉴시스)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한 제주항공이 '주식 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23일 공시했다. 텅 빈 이스타항공 사무실(사진=뉴시스)

 

[FE금융경제신문=권경희 기자]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이스타항공이 출범 13년 만에 문 닫을 위기에 직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제주항공이 23일 끝내 이스타항공과의 ‘노딜’(인수무산)을 선언하면서 파산 수순만 남았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은 지난 3월2일 이스타홀딩스와 체결한 ‘이스타항공 주식매매계약(SPA)’을 해제한다고 23일 공시했다. 이스타홀딩스는 이스타항공 지분 39.6%를 보유한 지주회사다.

제주항공은 인수 포기 배경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와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인수를 강행하기에는 제주항공이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고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피해에 대한 우려도 큰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양 사의 M&A는 공급과잉에 시달리는 국내 항공업계에서 시도된 첫 기업결합 사례로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항공기 45대를 보유,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중 1위인 제주항공은 항공기 23대를 보유한 이스타항공 인수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이석주 전 제주항공 대표(현 AK홀딩스 대표)는 당시 “이스타항공 인수를 통해 여객점유율을 확대하고 효율을 극대화 해 LCC 선두 지위를 공고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 하면서 M&A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2월부턴 임직원 임금을 체불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3월 말엔 국내·국제선 전 노선의 운항을 중단했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으로의 인수가 불발되며 사실상 파산 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스타항공의 올 1분기 자본총계 -1042억원으로 이미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이르렀고, 새 인수자를 찾을 가능성도 사실상 제로다. 이 때문에 업계는 이스타항공이 법정 관리에 돌입하면 기업 회생이 아닌 기업 청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결국 출범 13년 만에 공중분해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스타항공 오너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뉴시스)
이스타항공 오너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뉴시스)

이스타항공은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07년 10월 전북 군산을 거점으로 설립한 LCC다. 지난 2014년까지는 이상직 의원이 사장을 지낸 KIC그룹의 계열사 새만금관광개발이 지분 49.4%를 지닌 회사였다.

이 의원은 이스타항공그룹 총괄회장을 맡다가 2012년 19대 국회에서 전주 완산을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자 형 이경일 전 KIC그룹 회장에 경영권을 넘겼다. 이 전 회장은 배임·횡령 혐의로 2015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확정받았고, 같은해 자본금 3000만원으로 설립된 이스타홀딩스가 2016년 이스타항공의 지분 68.0%를 사들이며 최대 주주가 됐다.

이스타홀딩스는 이 의원의 아들 이원준씨(66.6%)와 딸 이수지씨(33.3%)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이스타홀딩스가 보유한 이스타항공 지분은 410억원 상당의 39.6%다. 이스타홀딩스가 설립된 지 약 5년 만에 이스타항공은 코로나19 사태 직격탄으로 경영난을 겪으며 매물로 나왔다.

이스타항공은 설립 이후 자본잠식 상태였다가 해외여행객이 늘며 2016년 흑자전환했다. 2015년에는 기업공개(IPO)에 도전하려 했지만 시장의 기대치가 낮아 상장이 불발된 바 있다. IPO가 지연되며 대규모 투자도 어려워져 결국 LCC 업계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아가 지난해 보잉 737 맥스 기종 추락사고로 선제적으로 도입했던 맥스 기종의 운항이 금지되고, 하반기 일본 불매 운동에 일본 노선까지 타격을 입었다.

악재가 이어지는 와중에 올초 코로나19 사태까지 시작되며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국내 1위 LCC 제주항공이 인수를 결정하며 한시름 놓는 듯했지만, 결국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며 M&A에 제동이 걸렸다. 이스타항공이 지난 2월부터 직원들에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며, 양사는 250억원가량으로 불어난 체불 임금을 놓고 책임공방을 벌여왔다.

이스타홀딩스 설립과 연관된 편법 승계, 자금 출처, 매각 차익 등과 관련된 의혹까지 불거지며 오너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이스타항공이 다양한 논란에 휘말리며 이 의원은 지난달 29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가족이 보유한 이스타항공 지분을 회사에 모두 헌납하겠다"고 강수를 뒀다.

그러나 인수 주체인 제주항공 측에서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체불임금을 포함한 1700억원 수준의 미지급을 해결하지 않으면 딜이 성사되지 않을 수 있다며 압박에 나섰다. 천문학적인 수준의 빚을 영업일 열흘 안에 갚으라는 요구였다. 직원들 임금도 5개월째 체불 중인 이스타항공 입장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제주항공이 ‘인수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대형항공사의 위상에 도전할 것으로 기대된 ‘메가 LCC’의 탄생도 물거품이 됐다.

M&A가 무산되면서 양 사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지급한 이행보증금(115억원) 반환, 셧다운(가동중단) 책임론 등을 둔 법정공방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양 측도 법무법인을 통해 이를 준비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LCC 한 관계자는 “지난 5월 이후 양 측의 대면협상은 사실상 중단됐던 것으로 안다”면서 “지금까지의 과정은 인수 무산을 염두에 두고 양 측이 각자 명분쌓기에 나선 것과 다름없다”고 전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유례없는 대량 실직 사태가 빚어지게 된 점이다. 이스타항공이 파산하면 당장 1600명의 이스타항공 직원이 실직자 신세가 된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도 실업 대란을 가장 걱정해 M&A 성사를 위해 직접 중재에 나서기도 했지만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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