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새 178억원에서 332억원으로 87% 늘어
카드사 리볼빙 서비스 ... 잘못 사용하면 '독'
청년층 플렉스 소비 문제 지목

[FE금융경제신문= 정성화 기자] # 20대 A씨는 지난 4월 다니던 회사가 경영악화로 문을 닫아 일자리를 잃게 됐다. A씨는 갑자기 끊긴 소득의 일부를 실업급여로 충당할 수 있었지만, 직장을 다니는 동안 신용카드 할부결제를 해놓은 금액이 크고 소비는 크게 줄지 않아 신용카드 대금을 납부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결국 A씨는 신용카드 결제일이 다가오자 연체에 대한 고민이 커졌는데 친구인 B씨로부터 카드사에서 제공하는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리볼빙 서비스에 가입하고 약정결제비율을 50%로 지정한 A씨는 청구된 카드 대금의 절반만 결제하고 다행히 연체를 피할 수 있었다며 안도했다. 리볼빙 서비스의 편리함을 느낀 A씨는 서비스를 해지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용했는데 한 달 한 달이 지날때 마다 어느새 원금과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 A씨의 고민도 함께 커지고 있다.

20대의 신용카드 리볼빙(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 서비스 이월 잔액이 크게 불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리볼빙 이월 잔액은 결국 신용카드 소비자가 카드사에 갚아야 하는 돈으로 청년 가계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의원(정의당, 비례대표)이 금융감독원으로 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4대 신용카드사(신한·KB국민·삼성·현대카드)의 리볼빙 이월 잔액은 올해 5월 말 기준 4265억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3년 전인 2017년 5월 말(3260억원)보다 17.8% 늘어난 금액이다.

특히, 20대의 잔액 증가폭이 컸다. 같은기간 20대의 리볼빙 잔액 규모는 178억원에서 332억원으로 87% 늘었다. 이어 60세 이상(28.5%), 30대(16.6%), 40대(13.1%), 50대(11.0%) 순으로 20대의 증가폭이 모든 연령대와 견주어 봤을 때 가장 두드러졌다.

◆ 카드사 리볼빙 서비스 ... 잘못 사용하면 '독'

신용카드 리볼빙 서비스는 신용카드 소비자가 매월 결제해야 하는 카드 대금의 일부만 결제하고 나머지 금액을 다음달로 넘겨서 결제하기로 약정하는 서비스다. 즉 결제 대금의 일부만 납부하고 일부는 카드사에 대출을 받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리볼빙 서비스 이용 고객은 매월 결제해야 하는 금액의 비율(약정결제비율)을 10~100%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는데, 예컨대 카드값이 100만원이 나왔을 때 리볼빙을 신청하고 약정결제비율을 10%로 지정하면, 그 달은 카드사에 10만원만 납부하면 된다. 나머지 90만원은 자동으로 다음 결제일로 이월된다.

문제는 리볼빙도 엄연히 대출서비스이기 때문에 대출이자가 붙는다는 것이다. 국내 카드사들의 리볼빙 수수료는 약 5~24% 정도로 카드사별로 신용등급에 따라 차등된 수수료가 부과된다. 신용등급이 높고 소득이 많은 사람이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할 가능성이 낮다고 가정할 때 대다수의 카드 소비자들은 보통 20% 내외의 수수료를 부담하는게 일반적이다.

또, 리볼빙은 카드소비자가 세심하게 신경쓰지 못하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쉽다. 보통 카드사가 제공하는 할부서비스와 리볼빙을 비슷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언젠간 카드사에 갚아야 할 돈이라는 것은 같으나 리볼빙은 종료시점이 없어 자칫 빚이 본인도 모르게 늘어날 위험성이 있다.

할부는 물품구매 당시 나눠서 갚을 개월 수를 지정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원금과 할부이자를 모두 부담하면 끝난다. 그러나 리볼빙은 매월 갚을 금액 비율만 정하면 고객이 해지하지 않는 한 계속된다. 이렇다 보니 서비스 가입 해당 월에서 넘어온 금액뿐만 아니라 매월 다달이 쓰는 돈의 일부도 계속 이월되므로 갚아야 할 원금이 계속 커진다. 원금이 커지니까 원금에 붙는 이자비용도 덩달아 불어난다.

소비계획을 세우지 않고 무분별하게 소비를 하면서 매월 일정금액만 카드사에 납부하다가는 빚더미에 앉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장점도 있다. 카드 소비자 입장에서는 실직이나 갑작스런 병원비 지출 등으로 카드값이 연체되는 상황이 생길 경우 안전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 할부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잘 활용하면 득이 될 수도 있다.

(자료
(자료=장혜영 의원실)

◆ 경제불황, 청년층의 고용불안·저임금 원인도 있지만 플렉스 문화도 영향

20대의 리볼빙 잔액은 지난 2017년 5월 말 기준 178억원에서 올해 5월 말 332억원으로 3년동안 87%가 폭증했는데 매년 연말, 연초에 일시적으로 하락한 것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매달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청년실업률을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하지만 지난 2018년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실업률은 9.5%로 직전 해인 2017년 통계인 9.8%보다 오히려 감소했었다. 이렇다 보니 청년층의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원인도 리볼빙 잔액의 상승의 원인일 수 있지만 기성세대와는 전혀 달라진 청년층의 소비행태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플렉스(Flex) 문화로 대표되는 젊은층의 소비행태다. 플렉스는 자신의 능력이나 부에 대한 지나친 과시 또는 과시적 소비를 뜻하는 유행어로 단어 자체가 '과시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만큼, 자신들의 사치성 소비를 알리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머뭇거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몇년 사이에 2030세대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이른바 플렉스 문화는 최신 트렌드를 추구하면서도 차별화되는 이색적인 경험을 선호하는 젊은층의 욕구와 맞불려 청년층의 소득수준을 뛰어넘는 과소비를 양산하고 있다.

젊은층들 사이에서 플렉스 소비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 2월 20∼30대 30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52.1%가 플렉스 소비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젊은 층의 플렉스 소비는 명품시장의 성장세에서도 엿볼수 있다.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반 년 넘게 지속되면서 유통산업 전반이 피해를 입은 가운데도 유독 명품시장만이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30 고객의 명품 매출 증가율은 2018년 19.7%, 2019년 20.3%, 올 상반기 30.1% 등으로 매년 상승세가 꺽일 줄 모르고 있다.

젊은층의 수입차 사랑도 뜨겁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입차 개인 구매 고객 8만195명 가운데 37%인 2만9687명이 10~30대였다. 차량 가격이 6000만원이 넘는 벤츠 E250 모델은 상반기 개인 고객에게 판매된 2806대 가운데 3분의1 가량인 879대가 2030세대에게 팔렸다.

이러한 젊은층의 소비행태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플렉스 소비로 인해 얻어지는 심리적 성취감이 젊은층의 합리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것 같다"면서 "원하는 물건을 소유하면서 심리적 자존감이 높아지고 구매 순간의 만족감을 즐기면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소비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재무관리 전문가들은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만 카드사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하고 약관과 금리, 수수료 등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또 여유자금이 생기면 그때그때 미리 결제해 수수료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면세점 명품 재고상품 처리를 위한 면세명품대전 행사가 열리는 지난 6월 25일 오전 서울 노원구 롯데백화점 노원점 행사장에서 고객들이 명품을 구입하려는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사진=뉴시스)
면세점 명품 재고상품 처리를 위한 면세명품대전 행사가 열리는 지난 6월 25일 오전 서울 노원구 롯데백화점 노원점 행사장에서 고객들이 명품을 구입하려는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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