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리보 시대'의 종말 ... "신뢰가 금융업의 근간"
[기자수첩] '리보 시대'의 종말 ... "신뢰가 금융업의 근간"
  • 정성화 기자
  • 승인 2020.08.21 0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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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금융경제신문= 정성화 기자] 지난 19일 한국수출입은행이 1억달러 규모의 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 연동 변동금리 외화채권을 발행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금융기관이 대규모 외화채권을 발행하고 자금 조달에 성공한 것인데 특징적인 것으로는 국내 금융기관이 SOFR 연동 외화채권을 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있는 일이다.

보통 국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금리로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가 활용돼 왔다. 리보금리는 런던 금융시장의 글로벌 대형 은행들이 단기자금 대출 및 파생금융 등의 거래 시 적용하는 금리다. 달러, 유로, 파운드, 엔화 등 10개 국제통화에 대해 하루부터 12개월까지 15개 만기에 대해 금리가 발표됐고 수 십년간 세계 각국의 국제간 금융거래의 기준 지표 역할을 해왔다.

각국의 금융기관들은 외화 자금을 들여올 때 리보금리에 일정한 가산금리를 붙여서 금리를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화를 빌릴 때 금리 조건에 대해 통상 '리보 + 가산금리(스프레드·Spread)'라고 표현한다.

리보금리가 전 세계 금융거래의 기준 지표 역할을 했던 이유는 금융산업이 발달한 영국은행들의 신용도가 한 때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했고 런던 금융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전통이 길고 규모가 큰 금융시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에서 오랜 전통과 권위를 자랑했던 리보금리는 이제 과거의 권위를 잃고 곧 다른 금리로 교체되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12년 세계금융의 흐름을 뒤흔들 대형 스캔들이 터졌다. 바클레이즈와 UBS 등 12개 대형 은행이 리보를 부정으로 조작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연루된 은행들은 1986년부터 800조달러에 달하는 전세계 금융거래에 적용한 기준 금리인 리보를 2005년부터 2009년에 걸쳐 조작했다. 특히 2007년 이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자금조달 비용을 숨기기 위해 집중적인 금리 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리보는 은행들의 모임인 영국 은행연합회(BBA)가 주요 회원들로부터 보고받은 금리 자료를 바탕으로 금융정보회사인 톰슨로이터가 계산해 배포한다. BBA가 자금 거래를 직접 조사해 작성한 금리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회원 은행들이 임의로 금리 자료를 제출하면 왜곡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될 수 있는 리보를 민간 은행들에게 정하도록 한 것은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됐다.

결국 금융시장의 가장 큰 생명인 신뢰가 회복하지 못할 수준까지 떨어졌고 리보의 감독기관인 영국 금융청(FCA)은 2021년 말까지는 리보금리를 고시하되 2022년부터는 금리 고시의무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2022년부터는 은행들의 리보금리 고시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대체 금리로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즉, '리보 시대'의 공식적인 종말이다.

리보 산출이 중단되면 국내 리보 연동 외화거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해졌다. 일부 해외 은행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에 전 세계 금융권이 새 지표를 만드는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게 됐다.

지난 5월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는 국내 금융지주사와 은행, 금융투자사, 보험사, 여신전문금융사의 CEO 및 금융권 협회장 등에게 공개서한을 발송해 "리보 산출이 중단될 가능성에 대비해 관련 금융계약의 당사자인 민간 금융사들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수출입은행이 리보 산출 중단을 대비해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SOFR 연동 외화채권을 발행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처럼 금융은 신뢰 없이 존재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최근 몇년 새 잇따라 발생한 사모펀드 사태는 금융소비자의 금융에 대한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 

한 번 훼손된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힘들고 신뢰를 회복할 기회마저 얻기 힘들다.  최근 안정세에 접어들다가 다시 위협으로 다가온 코로나 사태는 금융의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세간에는 은행을 두고 '비올 때 우산을 뺐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은행의 대출행태를 풍자한 말인데 돈이 필요 없을 때 굳이 찾아와 써달라고 부탁하다가도 정작 돈이 필요하면 얄짤없이 거둬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다시 거리는 활기를 잃고 문을 닫는 매장들이 크게 늘었다. 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게 느껴진다. 다시 비가 오는 데 은행과 금융권이 적극 나서 든든한 우산을 제공할 시기다. 적어도 이미 제공한 우산을 뺏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리보 사태에서 보듯 수 십년간 국제 금융거래에 활용된 지표도 신뢰를 잃으면 사라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이번 코로나 재확산 위기가 사모펀드 사태로 신뢰를 잃은 국내 금융권이 금융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정성화 기자  jsh1220@f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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