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은행연합회 이사회,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 의결
시중은행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후속조치로 '원금 손실 우려 '제동'
성숙한 투자 문화 형성 기대...단기적으로는 관련 상품 판매 시장 축소 우려

[FE금융경제신문= 정성화 기자] 앞으로 은행권의 펀드 상품 판매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들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후속조치로 '원금 손실 우려가 있는 비예금상품' 판매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등 내부통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 28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이날 은행연합회 이사회는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제정·의결했다. 원금비보장상품의 기획과 선정·판매·사후관리 등 상품 판매 전 과정을 총괄하는 임원급 협의체인 '비예금 상품위원회'를 두는 내용이 핵심이다.

'비예금 상품위원회'는 상품 기획 및 선정·판매행위·사후관리 등 은행의 비예금상품 판매에 관한 정책을 총괄하고 위원회 심의 결과는 대표와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관련 자료 등은 서면·녹취 등 방식으로 10년간 보관해야 한다. 적용대상은 은행이 개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각종 펀드·신탁·연금·장외파생상품·변액보험 등 원금손실 위험이 있는 비예금상품이다.

일부 안전자산으로 운용되는 머니마켓펀드(MMF)·머니마켓신탁(MMT) 등 원금 손실 위험이 낮은 상품은 제외되고,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상품 심의는 부서장 협의체 등 하위조직에 위임할 수 있다. 고난도 금융상품, 해외대체펀드(기초자산 해외 소재), 위험도 중간등급 이상(1~3등급) 상품 등은 위원회가 직접 심의해야 한다.

비예금상품을 판매하는 은행 직원이 지켜야 할 사항도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우선 은행은 비예금상품 설명서를 도입해 상품의 위험 내용을 예금상품과 비교 설명해 안내해야 한다.  특히, 손실이 증가되는 상황을 가정해 소비자가 최대 손실발생액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판매과정에서 녹취의무도 강화된다. 자본시장법상 의무사항인 부적합 투자자 및 고령자(65세 이상) 뿐만 아니라 일반 고객에 대한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시에도 판매 과정을 녹취하고 녹취 품질을 주기적으로 검수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투자권유 방법도 제한된다. 고난도 금융상품 등 비대면으로 상세한 설명이 곤란한 상품에 대해 투자를 권유할 경우 전화, 휴대전화 메시지, 카카오톡, SNS 등의 수단을 활용할 수 없다.

아울러, 단기 실적 위주의 영업문화와 특정상품 판매 쏠림 등의  개선을 위해 은행 영업점 성과평가지표(KPI) 개선사항을 반영하기로 했다. 특정 비예금 상품 판매실적을 성과지표로 운영하는 행위가 제한되고 불완전 판매 확인시 성과급을 환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한편, 이를 두고 은행권은 장기적으로 볼 때 성숙한 투자 문화가 형성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관련 상품 판매 시장의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상품 선정부터 판매, 사후관리 전 분야에 걸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번에 제정된 모범규준을 보면 원금 손실이 있는 상품을 판매할 때 지켜야 할 부분이 엄청 많아졌다"며 "정착되기까지는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은행 채널 판매가 제한적으로 운영되면서 대형 자산운용사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관계자는 "아무래도 판매사가 고객에게 제공할 자료의 신뢰성 등을 감안하면 (제조사인 자산운용사를 선택할 때) 대형 자산운용사 중심이 될 것"이라며 "소규모 자산운용사, 대안투자 전문운용사 등이 위축돼 투자상품 다양성이 당분간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덧붙여, "고난도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는 이해한다"면서도 "1년 정기예금 금리가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예금과 비예금을 나눠 은행의 비예금상품 판매를 규제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고 국민의 자산 증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현재 은행과 증권사 직원이 동일한 자격시험을 통해 펀드, 파생상품, 변액보험 등 판매를 하고 있다"며 "같은 상품을 다루는 금융사간 규제 내용이 다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규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기존 금융권과 카카오, 네이버 등으로 대표되는 빅테크와의 경쟁 측면에서 계속 언급됐었던 부분으로 이번 모범규준이 적용되면 빅테크와 경쟁에서 더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동(同) 관계자는 "(이번 모범규준이 소비자보호를 위해) 필요한 노력인 건 맞다"면서도 "금융 경계가 허물어지고 빅테크가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기존 은행들의 발목이 묶이는 명분이 생긴 것 같다"고 걱정했다.

한편, 이번에 제정된 모범규준은 올해 말 까지 각 은행들의 내규에 반영될 예정으로 내년까지 운영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본 후 개선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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