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금융경제신문=정성화 기자] 지난해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인터넷뱅킹으로 계좌이체를 하던 중 계좌번호를 잘 못 입력해 돈을 엉뚱한 곳에 보낸 A씨의 청원이 올라왔다.

본인을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A씨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약 3500만원을 압류계좌에 잘못 입금해 날리게 생겼다며 정부와 국회가 착오송금이 발생시 구제해줄 법안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모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단 한 번의 계좌이체 실수로 다 날리게 됐다는 A씨의 사연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고 착오송금 구제법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했다.

일반적으로 착오송금이 발생하면 해당 사실을 은행에 알리고 은행이 수취인에게 연락을 취해 반환요청을 하게 된다. 여기서 수취인이 빠르게 연락이 닿아 반환을 수락하면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수취인과 연락이 닿지 않거나 수취인이 특별한 사정이 없이 반환을 거부하는 경우다. 이 경우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민사청구는 인지, 송달료 등 별도의 법원관련비용과 발생하므로 비용대비 편익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소액인 경우 소송을 단념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소송으로 돌려받는다고 해도 많은 시간이 소요돼 급한 자금이 잘못 송금되면 피해가 커지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A씨의 경우는 착오송금의 사례 중에도 가장 운이 없는 케이스다. A씨는 "변호사사무실에 문의해도 힘들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밝혔는데 A씨가 입금한 계좌가 압류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A씨가 수취인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에서 승소한다고 해도 수취인이 지급능력이 없거나 계좌가 압류된 상태면 현실적으로 돌려 받을 방법이 없다.

최근 비대면 금융거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착오송금 건수와 미반환 금액이 매년 커지자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본격적으로 구제책 마련이 논의됐는데 송금인이 착오송금 구제 신청시 정부 예산과 금융권 출연금으로 80%를 지급하고 나중에 회수하는 내용으로 발의된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안 또한 논란이 됐다. 매년 피해가 커지고 있고 누구나 당사자가 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착오송금은 분명히 '개인의 실수'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실수를 국가가 어느정도 개입해 도울 것이냐'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정부예산을 투입해 구제한다면 결국 다수의 납세자들의 세금이 투입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또한 이 사안만 국가가 나서서 적극 구제하는 것도 다른 법들과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 또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대한 염려도 있다. 예컨대 실업급여 문턱을 낮추면 부정수급 가능성이 커지는 것처럼 너무 진보적인 구제책은 송금인과 수취인이 짜고 정부 예산을 갉아먹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지난 9일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지긋지긋한 착오송금에 대한 첫 구제시스템이 마련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에 착오송금 반환업무를 추가하고 예보가 수취인이 반환하지 않는 돈을 대신 받아서 관련 비용을 차감하고 송금인에게 지급하는 형태로 구제책이 마련됐다. 매년 급증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에 국회도 더이상 구제책 마련을 외면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당초 논의됐던 '선 지급 후 회수' 법안보다 후퇴했다는 이야기도 너무 소극적인 구제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어찌됐건 착오송금인들의 입장에서는 은행에 착오송금 사실을 알리고 반환이 안되면 변호사 사무실을 찾거나 소송을 준비해야 하는데 앞으로는 예보에 신청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절감되고 수취인도 국가기관이 나서는 만큼 부당이득을 되돌려주는데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예보는 송금인을 대신해 착오송금 반환업무를 하지만 무조건 받아 낼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A씨의 경우 처럼 계좌가 압류상태이거나 수취인이 지급능력이 없으면 예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예보가 반환을 돕는 것뿐이지 못 받을 돈을 대신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은 내년 7월부터 시행된다. 시행전까지 많은 논의를 거쳐 최종 운영계획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행 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더 적극적인 구제책 논의로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러나 훌륭한 구제제도가 있다 하더라고 결국 자신의 소중한 재산은 본인 스스로가 잘 지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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