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 시 금융권 첫 사례
노조, 노조추천이사제 법제화 추진

[금융경제신문= 정성화 기자] 사외이사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는 IBK기업은행이 금융권 최초로 노동조합 추천후보를 사외이사로 선임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만약 노조추천 이사가 최종 선임되고 노조추천이사제가 제도화될 경우 향후 국책은행과 금융공기업 전체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 노조는 오는 2월과 3월 사외이사 두 명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가 이사회의 구성원인 이사(理事)를 추천하는 제도다. 정식으로 선임된 이사는 법률과 정관에서 정한 바에 따라 사업계획·예산·정관개정·재산처분 등 경영 사안에 대한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노조가 추천한 인사가 경영에 참여하는 만큼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경영활동에 반영한다는 찬성의 목소리와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팽팽한 상황이다. 유럽에서는 독일·프랑스·스웨덴 등 15개국이 공공·민간부문에 이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기업은행은 임기가 3년의 사외이사를 최대 4명까지 둘 수 있다. 현재 기업은행 사외이사 4명(김정훈·이승재·신충식·김세직) 중 2명이 곧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다. 오는 2월 12일 김정훈 사외이사, 3월 25일 이승재 사외이사의 임기가 각각 만료될 예정인데 기업은행 노조는 이 시기에 맞춰 후보 추천을 위한 내부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후보 추천은 일반인에게도 사외이사 추천 기회를 주는 '국민공모제' 등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 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노조는 일회성 선임에 그치지 않도록 노조추천이사제의 법제화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은행법과 정관에 따라 이사를 기업은행장의 제청으로 금융위원장이 임명한다. 임명권이 금융위원장에게 있는 만큼 이번에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선임이 된다 하더라도 이를 제도화하려면 정관 변경 또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이에 노조는 "정관변경없이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수 있다"면서 '노조가 사외이사 1인을 추천할 수 있다'는 취지의 정관변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2월 임기 만료되는 사외이사 후임으로 노조가 추천한 인사가 선임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노조추천이사제의 정착을 위해 기업은행 정관을 바꾸려고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노조추천이사제가 현행법 체계에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해왔지만 실제 노조가 추천한 인사들은 자격이 미달된다는 이유로 실제 선임까지 이어진 사례는 없었다. 지난해 1월 한국수출입은행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가 최종 검증과정에서 탈락했고, 11월에는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이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를 사외이사로 추천했지만 주주총회에서 최종 부결됐다.

다만, 금융권은 이번에 기업은행이 은행권 최초로 노조추천이사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월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취임하면서 '노조추천이사제를 유관기관과 적극 협의해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노사 공동 선언문에 합의한 바 있고 노조 측도 윤 행장의 임기 2년차인 올해 사외이사 교체기에 노조추천 이사를 이사회에 입성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노조추천이사제가 도입될 경우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기업은행이 노조추천이사제의 선례를 만들면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만약 기업은행이 노조추천이사제를 시행하면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등 다른 금융공공기관도 노조추천이사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며 "국책은행, 금융공기업 등에 노조추천이사제가 정착되면 민간은행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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