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경제신문=정성화 기자] 최근 기존 은행을 보유한 대형 금융지주에서 인터넷은행 설립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 정보통신기술(ICT)기업 중심의 인터넷은행이 아닌 기존 은행권이 주도권을 가진 인터넷은행 설립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금융지주들 "ICT기업 주도 인터넷은행에 재무적투자자로서 참여 아닌, 직접 설립 원해"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은행연합회는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금융지주를 대상으로 인터넷은행 설립에 대한 수요 조사에 나섰다. 조사에 응한 대부분의 금융지주들은 향후 지분 100% 보유한 인터넷은행 자회사를 설립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지주들은 조만간 은행연합회를 통해 인터넷은행의 설립을 원한다는 의견을 금융당국에 전달할 예정이다.

현재 인터넷은행을 설립하려면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하지만 금융당국도 금융지주의 인터넷은행 설립에 크게 부정적이지 않고 현행법 하에서도 큰 법적제약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지주 내 은행이 인터넷은행 설립 주체로 나서면, 은행법과 시행령상 인터넷은행의 지분을 최대 30%까지만 보유할 수 있지만 금융지주가 지배할 수 있는 금융기관(표준산업분류에 따른 금융업·보험업 영위 금융기관)에 인터넷은행도 포함되기 때문에 금융지주사로서 '지분율 50%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만 충족하면 된다. 오히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은산분리 문제에서도 ICT기업들보다 자유로운 편이다.

이미 기존 은행 금융지주와 은행들은 ICT기업이 주도하는 인터넷은행에 재무적투자자(FI) 형태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지주가 독자적 인터넷은행을 가지려는 목적이 ICT기업에게서 인터넷은행 시장의 주도권을 뺏어오기 위한 목적이 있는 만큼 만약 금융지주가 인터넷은행 설립에 나서면 지분 100%를 모두 보유한 형태일 것으로 예상된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지분을 각각 9.35%, 26.2%씩 보유 중이고 SC제일은행은 제3인터넷은행으로 출범 예정인 토스뱅크에 재무적투자자로 참여 중이다.

이처럼 금융지주들이 인터넷은행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전 세계적 확산)으로 비대면 금융 거래로의 전환이 예상보다 빨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중 국내은행 인터넷뱅킹 서비스 이용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8개 국내은행과 우체국 예금 고객 기준 인터넷·모바일뱅킹 일평균 이용금액과 이용건수는 각각 58조6579억원, 1333만건으로 전년 대비 20.6%, 11.9% 늘었다. 전체 은행 조회서비스 인터넷·모바일뱅킹 비중은 90%를 넘어섰고 주택 담보대출 등 비대면으로 가능한 금융 서비스도 늘면서 은행창구 이용이 급격히 줄었다.

비대면 금융거래가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인터넷은행의 직원 1인당 생산성은 대부분의 시중은행을 추월한 상황이다. 시중은행들은 운영중인 점포를 줄여나가면서 생산성을 높이려고 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정보 소외계층을 보호를 이유로 점포폐쇄에 제동을 걸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점포 없이 영업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인터넷은행들이 미래 고객들을 빠른 속도로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금융지주들의 인터넷은행 보유 욕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뱅크는 10대 전용 서비스 '카카오뱅크 미니(mini)'를 출시해 MZ세대 고객들을 선점하고 있다. 보통 금융소비자들은 자신이 첫 통장을 만든 곳, 첫 월급계좌를 연 곳 등 주거래은행을 잘 바꾸지 않는 성향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기존 은행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할 수 밖에 없다.

◆인터넷은행 기존 설립취지 훼손, 자기잠식 등 반대 의견도 '팽팽'

​​​금융당국은 은행연합회가 제출한 금융지주사 수요 조사 결과와 7월로 예정된 은행업 경쟁도 평가 결과 등을 바탕으로 인터넷은행 추가 설립 필요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하지만 당국이 금융지주의 인터넷은행 인허가에 긍정적이라고 해도 실제 설립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우선,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기존 인터넷은행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현재 시중은행들이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들의 2대, 3대 주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지주가 보유한 인터넷은행이 영업을 시작할 경우 기존 주주사였던 은행들이 경쟁사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 설립 취지를 뒤흔든다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인터넷은행은 기존 은행들이 하지 않았던 금융서비스를 공급해 은행업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인가됐다. 금융당국은 제1호·제2호인터넷은행을  KT와 카카오에 인가하면서 '고인물' 같던 은행업계를 바꿀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른바 메기효과를 거두려고 했던 것인데 금융당국이 기존 은행업계에게 인터넷은행 라이선스를 부여하면 당초 인터넷은행 설립 당시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꼴이 된다.

노동조합 등 기존 조직원들의 반발도 변수다. 실제 인터넷은행 라이선스 취득과 관련해 금융지주 내부에서는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자기잠식)을 우려하는 시각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지주 안에 은행과 인터넷은행이 공존하면 건전한 경쟁보다 '제 살 깎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기존 인터넷·모바일뱅킹 경쟁력을 키우는 게 더 좋은 전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조의 반발도 예상된다. 금융지주내 별도의 자회사로 인터넷은행이 출범하더라도 기존 은행들과 효율성 비교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기존 은행들도 인력·점포 축소, 희망퇴직 연령 하향조정 등 비용감축을 통한 효율성 제고 작업이 빨라 질 수 있다.

결국 금융당국의 판단에 눈길이 쏠린다. 금융당국은 인터넷은행 인가를 내주면서 중금리 대출 시장 활성화를 전제조건으로 달았기 때문에 기존 인터넷은행들에 중금리 대출 상품을 늘리라고 주문한 상태다. 이들의 협조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토스뱅크 이후 이렇다할 차기 주자가 나오지 않으면 대형 금융지주의 진입을 적극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인터넷은행이 기존 은행들이 하지 않았던 금융서비스를 공급해 은행업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시작된 정책인 만큼, 정책취지가 흔들리지 않게 노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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