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설립 이후 46년 동안 중대재해로 사망 노동자 466명... 1년에 10여명 숨져
올해도 네번째 사망사고... 노동자들 '일터' 아닌 '죽음의 사업장'이라고 비판
'정주영 정신' 내세우는 권 회장 취임 이후 산재사망율 급증, 노조와 갈등 등 경영난맥상 심화
최근엔 20년 협력업체 기술을 강압적으로 빼앗은 뒤 거래 끊는 '갑질' 로 공정위 철퇴 맞아

[FE금융경제신문= 김용오 편집인] '칼의 노래'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 유명작가 김훈 씨는 "우리나라 산재 사망률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다.  지구상에 대한민국 같은 나라가 없다.  일하는 사람들이 일터에서 일하다가 떼죽음 당하는 참사가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우리는 숨 쉴 수 없다고 외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를 맡은 김훈 씨가 지난 7월 1일 21대 국회의원 다수가 참여한 '국회 생명안전포럼' 출범식에서 한 말이다.  김훈 작가는 "우리는 한국사회의 높은 재해율을 낮추기 위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으며 그 길로 가면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중공업, 건설 현장 등에서 해마다 수백명씩 소중한 목숨을 잃는다.  김훈 작가가 지적한대로 산재사망율이 OECD 국가 중 최고다.  대부분 인재다.  어느 한 기업, 한 공사현장에 국한된 게 아니다.  여기서 현대중공업을 꼬집어 지적하는 것은 대한민국 대표 사업장이며 현장노동자 사망사고 사례의 온갖 부정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또 말 뿐인 반성과 허울좋은 재발방지라는 '양두구육' 기업의 본보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1974년 설립 이후 46년 동안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수가 466명에 이른다. 해마다 10명이 넘는 노동자가 현대중공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는 1988년 노동조합 설립 이전에는 사측의 기록을, 이후에는 노조의 기록을 합한 것으로 공식 통계와는 다를 수 있다. 이같이 목숨을 잃는다면 '일터'가 아니라 '죽음의 사업장'이라고 불리워도 할 말이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수백 명 노동자가 현장에서 이런 저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도 현대중공업 법인과 대표이사가 책임을 진 적은 거의 없다. 지난 2004년 하청노동자의 중대재해 사망사고 4건이 연달아 일어나자 현대중공업 안전보건총괄책임자가 구속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데 그쳤다.

지난달 7월 21일에도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용접 작업 중 숨졌다.  현대중공업 내 사망사고는 올해만 벌써 네 번째다. 4월 21일에는 현대중공업 소속 50대 근로자 1명이 대형 문에 끼여 숨졌고,  같은 달 16일에는 이 회사 소속 40대 근로자가 유압 작동문에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앞서 지난 2월에는 작업용 발판 구조물에서 노동자 1명이 추락해 세상을 떠났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중대재해를 근절하고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표이사와 법인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절실히 필요하다" "안전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생기지 않도록 없도록 조선소 내 다단계 하도급을 금지해야 한다"고 ㅈ적한다. 이는 수십 년간 쌓인 문제가 반복되는 현실이다.  중대재해 기업을 처벌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수년째 허공의 메아리다.

노조는 "권오갑 부회장이 2014년 10월 취임했을 때부터 구조조정을 위해 위험 작업을 외주화한 뒤 사고가 더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자회사를 만들고 다단계 하청구조를 만들어 중대재해가 이어지는 것"이라며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해도 고작 벌금 40만 원에 불과한데 회사가 무엇이 두려워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시설안전에 투자하고 안전대책을 강구하겠느냐" "기업주도 사고 책임을 지게끔 하는 제도 정비 없이는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고 질타했다.

지난 2019년 11월 권오갑 회장은 "평사원 입사 40년 만에 그룹 회장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샐러리맨의 신화"로 언론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현대중공업 회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언론의 주요 관심사는 정몽준 대주주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의 거취였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권 회장이었다.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부회장, 회장으로 승승장구한 권 회장이 취임하면서부터 공교롭게도 현재중공업은 바람 잘 날이 없다. 현대중공업은 19년 연속 무파업을 이어왔으나 당시 권오갑 대표이사가 취임한 뒤 매년 파업이 반복됐다. 지난 9일에도 현대중공업 본사에서는 노조의 부분 파업이 벌어졌다. 올해만 네 번째다.  해를 넘긴 작년도 임금협상이 하계휴가를 앞두고도 타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노조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파업이란 강수를 둔 것이다.

또 현대중공업이 지난 3월 협력사와 상생모델을 구축하겠다면서 대대적인 언론보도를 통해 조선업계 최초로 동반성장실을 신설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체불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500여명에게 임금체불에 저가수주로 하청업체에 손해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중공업이 20여년간 함께 해온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강압적으로 빼앗은 뒤 거래를 끊는 '갑질'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았다.  지난 26일 공정위는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해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현대중공업에 시정명령과 함께 9억 7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협력업체와 함께 피스톤 제작을 국산화후 기술자료 유용해 생산 이원화하고 1년 뒤 일방적으로 거래 중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공정위가 현대중공업에 부과한 과징금은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대한 과징금 중 역대 최고액이다.

권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를 존경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3월에는 고인이 올해 타계 19주기라는 점을 언급하며 '정주영 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올해는 창업자께서 보여주셨던 생전의 모습들이 더욱 가슴속 깊이 다가오는 것 같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모든 경제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계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 회장이 이끄는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지는 잇딴 사망사고 등 갖가지 문제들은 '정주영 정신'과는 거리가 먼 듯 하다. 적어도 '죽음의 사업장'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아야 한다. 김훈 작가의 말을 그대로 빌린다면, 현대중공업과 권 회장이 노동자 사망률을 낮추거나 없앨 방법을 모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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