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마약·뇌물 등 내부비리 연이어 터져 ‘눈총’
취임 초기부터 분위기 뒤숭숭 … 기강 잡기·내부통제기능 강화가 우선
기재부 2차관 때 공공기관 채용비리 진두지휘 이력 ‘주목’

[FE금융경제신문 = 김용오 편집인] 

국민연금 내부 기강해이, 비리에 대한 역사와 전통은 찬란(?)하다. 오래전 과거, 2011년 7월 당시 오죽했으면, 국민연금 운용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다. 감사원 감사에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거래 증권사를 선정할 때 평가점수를 조작하거나 과도한 전관예우를 허용하는 등 '복마전' 같은 각종 비리가 드러났다. 천문학적 자금을 운용하기에 갖가지 내·외부의 유혹과 비리가 독버섯처럼 곳곳에서 피어나 언론으로부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옐로카드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결과는 흐지부지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20년 10월. 오늘날 국민연금의 내부통제 기능은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지난 8월 취임한 제17대 국민연금관리공단 김용진 이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직원들이 마약 사건에 휘말렸다. 무려 750조원 규모의 국민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기금운용본부 간부 직원 4명에 대해 수사당국이 대마초 흡입 혐의를 수사 중이다. 김 이사장은 다른 무엇보다 내부 직원들의 기강 해이를 바로잡고 내부통제기능을 확고히 해야 할 책임이 시급하게 대두됐다.

업계에서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공공기관 내부에서 마약 사건이 일어난 것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운용하고 있는 자금은 752조 2000억원에 이른다. 또 대체투자 부문의 규모만 해도 약 90조원이다.

때문에 국민은 불안하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직원들의 기강 단속에 소홀한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과연 내부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느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직원 기강해이와 관련된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만도 최근 몇 년 사이 연이어 발생해 더욱 우려를 키우고 있다.

2018년 10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직원 114명은 해외 위탁운용사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해외 연수를 다녀온 것이 드러났다. 이들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숙박비, 식비, 항공료 등의 명목으로 총 8억 4700만원의 돈을 수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임직원 행동강령에는 직무 관련자로부터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금품 등의 수수를 일절 금하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에는 퇴직예정자 3명이 기금운용 기밀정보를 전송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실장 1명을 비롯한 3명의 직원은 프로젝트 투자자료, 투자 세부계획 등의 기밀정보를 외장 하드와 개인 컴퓨터 등에 저장, 유출했다. 더구나 기금운용본부는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세부적인 경위 파악과 인사 조처 등을 하지 않아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내부 비리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직원들의 마약투약 사건에 이어 최근 내부 직원들의 수천만원 뒷돈 수수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지난달 24일 SBS는 국민연금공단이 2015년 발주한 10억원대 전산개발 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갔다고 보도했다. 실무직원이 약 9000만원을 받고 특정 업체에 사업을 몰아준 것으로 밝혀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공기관 전산개발 사업 수주 과정에서 이런 뒷돈 관행은 비일비재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같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국민연금 비리는 윤리규정이나 내부통제 시스템이 미비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 내규와 내부통제 시스템 등에는 이미 직원 윤리준칙, 윤리헌장, 준법감시인 등 다양한 통제장치를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부정과 비리, 불공정한 문제들이 없어지지 않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이사장들이 1-2년 정도 자리를 머무는 인사시스템과 이에 따른 보신형 리더십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은 김 이사장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내정됐을 때 당시 기재부 제2차관이었던 김 이사장에 대해 "부적합한 낙하산 인사"라고 질타했다. 연금행동은 성명을 통해 "국민연금과 관련한 활동과 경험이 전무한 기재부 관료 출신이 이사장으로 선임된 것은 명백히 부적절한 낙하산 인사"라며 "오랜 기간 숙고하고 검증한 결과가 고작 이 정도인가"라고 비판했다.

연금행동은 "국민연금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를 거치고 있다. 국민연금 강화를 통해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보장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사회 취약계층이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국민연금 이사장 선임은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것" 이라며 "우리는 청와대와 복지부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낙하산 인사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김 신임 이사장은 실천을 통해 스스로 증명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사장의 행보를 빠짐없이 지켜볼 것이다. 기존 기재부의 입장처럼 기금운용본부 공사화 등 국민연금을 흔들거나, 국민연금을 강화하는 사회적 과제를 외면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국민연금 내부 간부직원들의 마약 사건과 금품수수 등 모두 김 이사장의 취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국민연금 직원들의 이전 구설수나 운용역의 인력난 문제도 함께 부각되고 있는 점은 향후 부담이 될 수 있다. 내부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김 이사장은 9월 20일 입장문을 통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신뢰회복을 위한 쇄신 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7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도 시끄러울 것으로 관측된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가 비어있던 2020년 5월경부터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결국, 2020년 8월 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확정되면서 '보은인사' 논란이 재차 불거졌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전임자인 김성주 전 이사장과 마찬가지로 총선에서 낙선한 더불어민주당 후보 출신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서 '보은인사'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CEO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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