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에 소액 무이자·무담보·무보증 제공
성실상환자 대상 한성저축은행과 '착한대출' 선보여
"일회성 현금살포 보다 취약계층 자활 생태계 만들어야"

▲ 이창호 더불어사는사람들 상임대표

[금융경제=정성화 기자]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은 제도권 금융회사와 거래하기 힘든 저소득층에게 담보 없이 대출해주는 제도를 뜻한다. 소액을 빌려준다고 해서 마이크로라는 말이 붙었다.

마이크로크레딧은 2006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 사회운동가 무함마드 유누스가 1973년 20여 달러 때문에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시달리던 빈민들에게 자신의 돈을 빌려준 것이 시발점이 됐다. 유누스는 1976년부터 자신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더 많은 빈민들에게 담보없이 소액신용대출을 하는, 이른바 '그라민은행 프로젝트(Grameen Bank project)'를 실험했다. 그라민은 방글라데시어로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라민은행으로부터 소액 대출을 받은 600만명의 빈민들 가운데, 58%가 빈곤에서 벗어났고 담보 없이 돈을 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원금 회수율이 99%에 달했다. 그라민은행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빈곤구제 방법론에 영감을 줬고 다른 형식의 소액 대출이 활성화되는데 촉매 역할을 했다.

다만, 그라민은행 모델에 대한 비판도 있다.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 이자율이 연 20%에 달해 일반 은행에 비해 대출금리가 절대 낮지 않았으며 몇 명의 대출자를 묶어 조를 만들고 해당 조 사람들이 돈을 값을 때까지 그 조 사람들에게 추가 대출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연대보증 형태는 차주가 돈을 못 갚게 될 때 사회적 압박으로 작용해 원금 회수율99%를 달성헀다는 지적이다.

국내에도 취약계층에게 무담보·무보증으로 소액을 빌려주는 곳이 있다. 그러나 그라만은행처럼 이자도 없고 대출자를 묶어 압박을 가하지도 않는다. 사단법인 더불어사는사람들은 후원자들의 후원한 돈으로 기금을 조성해 정말 절실한 사람에게 3무(무이자·무담보·무보증)로 돈을 빌려주는 비영리단체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면 기금이 금방 바닥나 사업의 영속성에 의문이 들지만 지난 2011년 설립돼 대출건수와 대출금액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9년 여간 저소득층에 지원된 대출금이 10억원이 넘는다.

한국판 마이크로크레딧 더불어사는사람들을 운영하고 있는 이창호 상임대표를 만나 3무(無) 대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이창호 더불어사는사람들 상임대표와 일문일답.

-취약계층 자립을 위한 소액대출 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더불어사는사람들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은 취약·빈곤계층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1년 창립됐다. 창립 이듬해인 2012년부터 취약계층에게 무이자 소액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제도권 금융회사가 외면하고 사채마저 쓰기 힘든 취약계층에게 무이자·무담보·무보증으로 소액대출을 해주고 있다.

금융기관은 개인신용등급이나 상환 가능성을 보고 지원 여부를 결정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더 중시하기에 신용등급 조회 같은 절차를 생략하고 사연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돈을 어디에 쓸지를 주의 깊게 본다. 일반적으로 부양가족이 없고 건강한 남성보다는 부양가족이 많고 건강문제가 있어 경제활동이 원활치 않은 상황에 놓여있으면서 병원비, 공과금, 생필품이 필요한 경우를 우대한다. 대출방식은 대출이 시작된 2012년 초기 몇 건을 빼고는 전부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굳이 우리 사무실을 찾아올 필요도없고 나를 만날 필요도 없다 처음에는 30만원 정도를 빌릴 수있고, 무이자·무담보·무보증이지만 엄연히 대출이기 때문에 성실 상환자에게는 추가대출을 해주거나 한도를 높여준다. 대출시 주민번호를 받지않기 때문에 대출을 갚지 않아도 채무불이행자로 등록하는 등의 불이익은 없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없이 대출금을 갚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추가대출은 해주지 않는다. 단돈 몇 천원이라도 상환의지와 자활의지가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더불어사람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신용도라고 볼 수도 있다.

최종적으로 수혜자들의 자립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창업상담과 일자리지원도 제공하고 재무상담도 해준다. 2012년에는 MRI 촬영이 필요해 대출을 해달라는 한 사연을 듣고 대출 대신 병원을 연결해주기도 했다. 이 일이 계기가 돼 여려 협력기관들을 통해 치과치료, MRI 촬영, 법률자문, 컴퓨터, 필수 생활용품 등을 지원하기도 한다.

더불어사는사람들 대출 수혜자가 이창호 대표에게 보내온 문자메시지. 소액임에도 불구하고 상환 의지를 강하게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다.(사진=정성화 기자)

-대부업체도 이용하기 힘든 취약계층에게 3무(무이자·무담보·무보증) 대출을 비대면 방식으로 제공하는데 상환율이 궁금하다.

지난 2012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누적 대출 실행금액은 11억6984만원이다. 누적 상환액은 누적 9억1822만원이다. 약 87%정도 된다. 공식적으로 대출기간은 1년이지만 조기상환 하는 경우도 많고 문자메시지로 상환일을 알리긴 하지만 1년이 지나도 따로 연락을 하거나 상환 압박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가 대출금을 상환하는 분들도 있다. 5년이 넘게 상환이 되지 않으면 대손상각 처리하는데 대손금이 2968만원 정도다.

-상환율이 높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취약계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처럼 보는 이들이 많지만 더불어사는사람들의 착한대출의 수혜자들은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믿어주고 신뢰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이 분들의 상환·자활의지를 높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분들에게는 당장 큰 돈이 필요한 게 아닌데도 수입이 일정치 않고 신용도가 낮다는 이유로 제도권 금융회사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는다. 돈을 빌릴 수 있더라고 고금리의 늪에 빠져 생계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된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이 빌려주는 금액은 크지 않지만 누군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메시지를 줘 희망을 갖게 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혜자들은 이러한 믿음에 힘을 얻고 빌려간 돈을 필요한 곳에 쓰고 다시 돌려준다. 때론 수혜자가 기부자가 되어 나타나 더없는 감동을 줄 때도 있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은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대출 신청자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연락이 오나.

초창기에는 입소문을 통해 대출문의가 종종 있었고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대출문의가 폭증했다. 작년에는 대출 이용 제약으로 어려움을 겪은 한 분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청원글을 올렸다가 금융감독원으로 이첩돼 금감원 민원 회신 공문을 통해 우리 기관을 알게됐다고 대출문의가 온 경우도 있었다.

물론, 더불어사는사람들이 알려질수록 대출문의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후원도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금은 한정돼 있어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기관을 찾는 모든 분들에게 다 대출을 해줄 수 없는 것은 항상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수혜자들의 자립을 목표로 한다고 했는데 결국 더불어사는사람들을 벗어나도 제도권에서 대출을 이용하기는 힘든 게 현실 아닌가.

사실이다. 그래서 단순히 소액을 빌려주는 역할을 넘어 취약계층이 자립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서민금융연구원에서 한성저축은행과 손잡고 금융소외계층을 위해 선보인 '착한대출'이 좋은 예다.

'착한대출'은 더불어사는사람들에서 2년간 성실히 상환한 고객을 대상으로 신용등급과 무관하게 300만원 한도로 한성저축은행이 저금리로 신용대출을 내주는 방식이다. 금리는 연 3% 수준이다.

아직 '착한대출'의 대출자가 많은 수준은 아니지만 계속 다양한 방식의 자립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다.

-올해 코로나19로 경기가 나빠지면서 대출신청이 급증했을 것 같다. 

올해 상반기 한정된 기금 안에서 대출을 해주니 대출 건수와 총액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대출신청 전화나 문자는 적게 왔다. 아무래도 정부나 지자체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의 영향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재난지원금을 두고 일각에서 '현금 살포'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취약계층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됐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일회성 효과로도 볼 수 있는 게 하반기 들어서는 대출문의가 또 늘고 있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취약계층에게 그냥 지원금을 지급하면 일회성 소비로 끝나고 자활에 큰 도움이 못 될 것 같다. 무이자·무담보·무보증으로라도 빌려주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그래야 수혜자들이 책임감과 자활의지를 갖는다.

정치인과 정책당국자들이 더불어사는사람들의 경험을 정책을 만드는데 참고 했으면 좋겠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해 대출 사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정부가 기업이 어려워지면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시키듯이 취약계층들에게도 일단 돈을 빌려주는 것 해보면 어떨까 싶다. 잘 갚으면 금액 상향해서 빌려주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대출금액을 올려주는 방식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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