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경제신문= 정성화 기자] 정치권발(發) 이익공유제 논의에 금융권이 떨고 있다.

이익공유제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린 업계가 피해를 본 업계와 이익을 나누도록 한다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배달업체, 온라인커머스 등 플랫폼기업을 겨낭하더니 금융권으로까지 타깃을 넓히고 있다.

금융권의 이익공유제 참여 논란에 불을 지핀 건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다. 홍 의장은 지난 19일 K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현재 코로나 상황에서도 이익을 보고 있는 가장 큰 업종이라고 하면 이자를 꼬박꼬박 받아가는 금융업"이라며 "은행권도 이자를 낮춰주거나 불가피한 경우 임대료처럼 이자를 중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은행이 개인에 대한 신용등급을 하락시켜 이자 부담을 더 높이거나 가압류, 근저당 등을 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올 한 해 동안은 멈추는 사회운동이나 한시적 특별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홍 의장의 발언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은행들은 가만히 앉아 손쉽게 돈을 벌고 고통분담에는 인색하다는 인식이 깔린 듯 하다.

정치권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은행권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이해는 간다. 영업제한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은 빚을 내어가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 나가는데 은행원들은 2~3년치 월급을 희망퇴직금으로 받고 짐을 싸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 6개월 동안 추진한 24번의 부동산 정책에도 불구하고 잡히지 않은 집값을 보면 시장과 산업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는 정책 입안은 부작용을 면밀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은행들이 현재 처해 있는 경영 환경은 절대 녹록치 않다. 국내은행의 지난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10조3000억원으로 2019년 같은 기간(12조1000억원) 대비 1조8000억원(15.1%) 감소했고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 되면서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3분기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이 이자 받는 것을 강제로 중단시키면 이자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동안 신규 대출 영업을 중단할 수 있어 급하게 유동성이 필요한 서민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예금이자 역시 급격히 낮아지거나 없어져 은행을 이탈하는 자금이 늘어날 수 있다. 은행을 이탈한 자금은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등에 몰려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이미 은행권이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만기연장·이자상환유예 조치에 1년간 동원됐다는 것도 부담이다. 은행들은 지난해 3월부터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대출만기연장, 이자유예조치를 6개월 동안 운영해 왔고 올해 3월 말까지 한 차례 연장했다.

최근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대출만기·이자상환유예를 재연장하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은행권의 시름은 더욱 깊어진 상황이다. 원금 뿐만 아니라 이자까지 납입을 유예해주면서 차주(借主)의 상환능력을 가늠할 지표 자체가 없어진 상황에서 유예 조치가 끝나면 발생할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하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IBK기업은행에 이자 상환 유예를 신청한 대출 원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3조4420억원으로 은행들은 이 가운데 최소 30%, 많게는 50%가 디폴트(채무 불이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홍 의장은 금융권 이자 중단 발언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21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일부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시장의 실패를 인정 안 한다"면서 "시장에 맡겨서 잘 됐으면 이런 양극화, 불평등 문제제기를 할 일도 없다"고 설명했다.

홍 의장 말대로 시장은 완전하지 않고 분명 정부의 감시와 개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 마다 요동치는 부동산 시장을 보면 어쩌면 시장실패보다 정치·정부실패가 더 무서울 지도 모른다. 

아울러, 정부와 여당도 24번의 시도에도 잡히지 않은 집값을 본보기 삼아 시장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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