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경제신문=정성화 기자] "당국의 책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당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는 보지 않는다. 마치 교통경찰하고 신호 위반자 관계 같은 것으로 신호 위반했다고 교통경찰이 일일이 책임질 순 없다"

"은행장이 모든 임직원의 행위를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사실상의 결과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많다"

금융감독원이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에 대한 무더기 징계를 추진하는 것을 두고 각각 윤석헌 금감원장과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한 달 간격을 두고 이같이 밝혔다.

현재 은행권은 사모펀드 사태로 금융지주 CEO 및 은행장들이 줄줄이 중징계가 예고돼 있다. 금감원은 라임펀드를 판매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은행장인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당시 우리은행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에게 각각 직무정지와 문책경고를 사전 통보한 뒤 지난달부터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있다.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권고, 직무정지, 문책경고, 주의적경고, 주의 등 5단계로 나뉘는데 이중 문책경고 이상은 3~5년 금융사 취업을 제한하는 중징계로 분류된다. 해당 징계가 확정될 경우 연임도 불가능해진다.

감독당국의 수장인 윤석헌 금감원장은 금융회사들의 관리 소홀에 대한 비판에 신호위반에 대한 교통경찰의 책임을 비유해 답변했고 은행업권을 대표하는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임직원은 1만여명을 훨씬 넘는 수준인 것을 감안할 때 우리은행장과 신한은행장이 임직원 업무내용을 일일이 감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역설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김광수 회장은 "금융 감독당국의 징계는 법제처와 법원의 기본입장인 '명확성의 원칙'과는 비교적 거리가 있어 금융권에서 예측하기가 어렵고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위험이 높다"고도 말했는데 명확성의 원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규범이라면 명확하게 확정해야 법관의 자의를 방지할 수 있다는 법리를 뜻한다.

현재 법률상 내부통제 미비를 이유로 CEO 개인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금감원 주요 펀드 사태에 대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을 근거로 CEO에게 중징계를 내리고 있는데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24조는 '금융회사는 주주,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금융회사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을 뿐이다.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얼마든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김 회장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발언한 것은 감독당국이 이런 모호한 규정으로 기관이 아닌 개인인 은행장들에게 과도한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이 불합리하고 법률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 측면이 있다.

사모펀드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면서도 CEO 중징계가 과도한 면이 있다고 느껴왔던 은행권은 김 회장의 작심발언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은행권은 '금융사가 다 잘한 것은 아니지만 금융당국이 부실 관리에 책임을 오롯이 금융사에게만 넘기고 있다'는 불만이 있었다.

사실 이번 사모펀드 사태를 두고 금융권 CEO들을 중징계하는 것이 우리 금융산업 발전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감독당국 수장이 책임을 회피하고 금융사들과 금융사 수장들의 탓만 해서는 본인도 영이 서지 않고 사모펀드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은행업권은 윤석헌 금감원장을 향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말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교통경찰이 모든 신호 위반자를 단속하고 책임질 수는 없다면서 은행장들은 모든 업무를 관리·감독하고 결과적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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