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올해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발표....쿠팡·현대해상화재 등 8곳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
공정위 "외국인 총수 규제하기 어려워" 배경에도 쿠팡 '형평성 논란' 불가피…정의선·조현준 총수 지정 외국인 특혜 논란에도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첫날인 11일(현지시간) 쿠팡 배너가 정면을 장식한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AP뉴시스)

[금융경제신문=권경희기자] ‘한국계 미국인’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임에도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오너처럼 회사를 지배하는 동일인(총수)에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아니라 법인 ‘쿠팡’을 지정한 것.

쿠팡은 자산 5조원이 넘어 대기업 관련 규제를 받게 되지만, 김범수 의장은 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그룹 총수에 해당되는 동일인 관련 규제를 피하게 됐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사례가 없고,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하더라도 형사제재를 가하기 어렵다는 점이 배경이지만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2021년도 대기업집단 지정결과’를 발표하며 자산 5조원을 넘긴 쿠팡을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쿠팡의 동일인을 쿠팡 법인으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쿠팡을 사실상 지배하는 김범석 이사회 의장을 공정위가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하지 않는다는 선례에 따라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것이다.

쿠팡은 지난해 자산 총액이 5조8000억원으로 전년(3조1000억원)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하며 올해부터 대기업집단에 편입됐다. 공정위는 당초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자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할지를 놓고 고심해왔다. 공정위는 그동안 외국계 기업이 대기업집단이 되면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왔다. 외국계 기업인 S-OIL 역시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자회사가 최대주주라 총수 없는 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있다. 한국GM도 미국 제너럴모터스가 최대주주라 한국GM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이에 쿠팡 역시 ‘총수 없는 대기업’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이에 시민단체와 업계, 정치권 등은 쿠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공정위는 방향을 선회해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김 의장은 쿠팡 지분을 10.2% 보유했으나 주당 29배 의결권을 가져 실질적 의결권은 76.7%에 달해 쿠팡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김범석 의장이 쿠팡 내에서 다른 재벌기업 총수와 비슷한 황제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돼 왔다.

쿠팡은 미국 법인인 쿠팡Inc의 자회사다. 쿠팡Inc는 김 의장의 지분율이 76.7%(차등의결권 적용 시)로 김 의장이 쿠팡Inc를 통해 한국 법인 쿠팡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동안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적이 없고, 현행 제도로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기 어려워 김 의장을 지정하지 않았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기업집단 지정자료에 허위·누락이 있으면 동일인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데, 외국인의 경우 형사제재를 내리기 어렵다는 의미다.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든 쿠팡㈜를 동일인으로 지정하든 계열사 범위는 동일하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설명이다.

다만 쿠팡이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이익을 벌어들이는 기업인데도 김 의장이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규제망을 벗어나게 된 만큼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동일인 지정이 안 된 김 의장은 동일인으로서 받는 다방면의 규제로부터 벗어나게 됐다. 동일인이 되면 배우자, 6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에 대한 공시 의무가 생기고 지정자료 관련해 모든 책임을 지게 되는데 이 같은 의무를 김 의장은 피하게 된 것이다. 쿠팡 총수로 지정된 쿠팡 국내 법인은 해당 법인과 산하 국내 계열사들의 거래만 공시하면 된다.

공정위는 이번 경우는 한시적 사례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지정을 계기로 동일인 정의와 요건, 동일인관련자 범위 등 지정제도 전반에 걸친 제도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측은 “한국계 외국인이 국내에 대기업집단을 만든 사례가 처음 등장했고, 국내에 친족도 있다”며 “현행 규제가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당장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판단해 규제하기엔 실효성 등 일부 문제되는 측면이 있어 이와 유사한 경우 어떻게 할지 검토하고 그 결과에 따라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동일인의 정의, 요건 등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투명성이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연구용역을 통해 이를 명확히 하고 동일인에 관한 구체적인 제도화 작업에 마련한다는 설명이다.

한편, 이번에 쿠팡과 함께 현대해상화재보험, 한국항공우주산업, 중앙, 반도홀딩스, 대방건설, 엠디엠, 아이에스지주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새로 지정됐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수출입은행이 최다출자자인 점을 참작해 한국항공우주산업㈜을 동일인으로 판단했고 나머지는 최다출자자나 최고경영자인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KG는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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