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승 편집국장
최진승 편집국장

얼마 전 모 증권사로부터 '증권형 토큰 사업 속도감 높인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받았다. 9월부터 증권형 토큰 사업모델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양한 업체들과 협업도 추진한다고 했다. 자료에는 '증권형 토큰'이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었으나 내용상 '토큰 증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해당 업체에 문의한 바도 '토큰 증권'의 의미였다. '증권형 토큰'으로 표시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으나 다른 뜻은 없었다. 단지 같은 의미로 썼을 뿐이다.

증권형 토큰은 시큐리티 토큰(Security Token)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가상자산업계에서 오래 전부터 써온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올해 초 금융당국이 토큰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토큰 증권'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증권형 토큰은 '증권적 성격을 지닌 토큰'이라는 의미가 강해 기존 가상자산과 혼동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토큰 증권은 '토큰의 성격을 지닌 증권'이란 뜻에서 증권의 측면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증권은 증권인데 기존 전자증권과는 다른 새로운 것이기에 토큰 증권이란 새 용어를 만든 것이다.

'증권형 토큰'과 '토큰 증권'은 말장난처럼 보일 수 있지만 문자적 의미보다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같은 STO(시큐리티 토큰 발행)를 놓고 가상자산업계와 기존 금융투자업계 간 시각 차이를 엿볼 수 있다. 가상자산 측면에서 보면 증권형 토큰이고 전통 금융사 입장에서 보면 토큰 증권인데, 우리나라에서 ST는 이제 '토큰 증권'으로 굳어지는 듯 하다. 관련 업계에서도 앞으로 ST라고 하면 '분산원장 기술을 이용한 증권'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증권형 토큰이란 표현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마치 과거 가상화폐라 불리던 것이 지금은 가상자산이란 용어로 공식화 되었듯이.

토큰 증권이 대세로 굳어지는 분위기이긴 하나 한편으로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토큰이라는 아직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가능성을 증권이라는 틀에 우겨넣은 것 같은 느낌이다. 토큰은 점점 더 많은 영역으로 쓰임새를 확장하고 있는데 그 의미를 특정 분야에 한정짓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가상자산으로부터 시작된 토큰은 NFT(대체불가토큰), DID(분산신원인증) 등을 통해 일상의 곳곳으로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토큰은 가상화폐에만 머물지 않고 광고나 카피 등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는 일상 용어가 됐다.

토큰 증권이 자리를 굳히면서 기존 가상자산사업자들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상자산업계 입장에서 토큰 증권은 다양한 비즈니스의 폭을 좁히는 규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토큰 증권 사업이 성장할수록 가상자산업계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어떤 형태로든 기를 쓰고 인정하면 안되는 게 토큰 증권인 셈이다.

본래 증권형 토큰도 가상자산업계 내에서 불문율에 가까웠다. 제도화에 따른 리스크로 인해 그것은 입밖에 꺼내면 안되는 말이었다. 오래 전부터 그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었으나 쉬쉬할 수밖에 없었던 게 증권형 토큰이었다. 국내 가산자산 거래소가 생긴지 올해로 10년째지만 그간 증권형 토큰에 대한 언급은 한 차례도 없었다는 관계자의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반면 토큰 증권이 무분별한 사업을 적절히 규율하기 위한 규제 프레임인 것도 맞다.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투자자 보호도 명분이 된다. 금융당국이 조각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오래 전부터 경고해온 것도 사실이다. 규제와 혁신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어떤 의미에서 토큰은 혁신을, 증권은 규제 명확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토큰 증권을 바라보는 일선 사업자들의 혼란은 여전하다. 가상자산법과 자본시장법을 통해 제도적 정비를 갖춰나가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명쾌하지 않은 구석들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토큰증권사업자와 가상자산사업자의 범위, 국내 ICO(최초 코인 발행) 허용 여부 등이 다가올 이슈들이다.

토큰 증권은 모처럼 우리 정부가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인 입법 과제이다. 다만 토큰 증권이 규제에만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 산업이 성장하려면 규제와 진흥이 병행돼야 한다. 이제 갓 출현한 가능성 있는 분야에 대한 혁신의 날이 무뎌지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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