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무역수지 적자 막고자 플라자협정 체결 미드타운 5번가에 있는 유서 깊은 호텔 뉴욕플라자는 객실 230개를 갖춘 뉴욕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나홀로 집에2’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고 비틀스와 마크 트웨인 등 유명 인사들이 애용했던 호텔이기도 하다. 뉴욕플라자는 한편으로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협정이 이뤄진 장소이기도 하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 고급 의전용 리무진 차량이 줄지어 도열했다.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 등 G5국가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아베 이어 기시다 내각의 3분2가 일본회의 지난해 7월 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수상이 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통상선거를 앞두고 후보 지원 유세를 하던 도중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암살범 야마가미 데쓰야는 어머니가 통일교 신자인데 많은 액수를 기부해 파산했다며 통일교와 관련이 있는 아베 신조에 대해 깊은 원한이 생겼다고 했다.실제로 아베 총리는 통일교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친밀한 관계였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키가 국제승공연합 설립에 관여했고 아베 총리도 관방장관 시절 통일교의 합동결혼식에 축전을 보내기
◇1000여곳의 양조장에서 다양한 사케 생산 한국인들은 사케를 정종(正宗)혹은 청주라고 부른다. 사케를 일본어 한자로 정종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정종은 브랜드명이다. 일제강점기 때 부산을 중심으로 사케를 유통하던 회사 중에 정종이라는 표기를 사용한 곳이 있었고 이것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브랜드명이 상품명으로 잘못 굳어진 것이다.정종이라는 단어를 사케에 사용한 것은 일본 효고현에 있는 사쿠라마사무네(櫻正宗) 양조장의 대표자 야마무라 타자에몬(山邑太左衛門)이 처음이라고 전해진다. 정종(正宗)이라는 한자 자체가 일본어로 발음하면 세이슈우
◇사케 만드는 일 농사를 짓는 것과 같아3년전 일본 양조장 취재를 위해 주부(中部)지방에 있는 이시카와 현에 들른 적이 있었다. 이시카와 현의 유서깊은 데도리가와 양조장은 무려 140년이나 된 곳이다.양조장에 들어서려는데 양조기술자로 보이는 이가 젊은 직원과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경험과 직관을 얻는 것이 좋은 사케를 만드는 비법이야.”양조기술자는 데로유키 야마모토상. 양조장의 전문양조기술자인 도지(杜氏)다. 젊은 직원은 데도리가와(手取川)양조장의 6대 계승자인 야마모토의 아들이다. 양조장내에서 야짱으로 불리는 젊은 계승자는 어린
◇야쿠자의 세력약화 틈타 불량배 한구레 성장2012년 9월 2일 오전 3시 40분쯤,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롯폰기에 있는 클럽 플라워(FLOWER)에서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음악 이벤트가 열리고 있는 클럽에 복면을 쓰거나 선글라스를 착용한 남성 10명이 난입했다.이들은 VIP룸에 있던 음식점 경영자 후지모토 료스케(31)를 파이프로 무자비하게 폭행하기 시작했다. 후지모토를 때리고 나서 도주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분도 되지 않았다. 후지모토는 병원에 후송됐지만, 두개골 내 손상으로 끝내 사망했다. 당시 클럽 안에는 수
◇압도적 자금력 갖춘 조직 폭력단한 세기가 끝나가는 1999년 19살 소년 야마모토 겐지는 마약을 하다 죽은 전직 야쿠자였던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왔지만 별 감정이 없다. 동네 날건달로 살고 있지만 야쿠자가 될 생각도 마약상이 될 생각도 없다. 우연히 거리에서 마약상을 발견한 야마모토는 그를 두들겨 패고 마약과 돈이 든 가방을 가로채 달아난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 때문일까? 마약은 바다에 버리고 빼앗은 돈으로 단골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우연하게 시바자키파 두목의 목숨을 구해준다. 다음날 야마모토와 친구들은 야쿠자에게 쫓겨 피투성이가
◇배신과 배신이 꿈틀거린 사무라이 역사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에 대한 애칭이 붉은 악마이듯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애칭은 사무라이재팬이다. 야구와 사무라이를 연결시킨 것은 일본에 야구가 전파될 때부터 일본 사회가 무사들이 칼을 들고 겨루는 행위와 야구에서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을 치는 것을 유사한 맥락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야구에는 ‘무사도(武士道)’가 깃들어 있다는 표현까지 나왔었다.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일본에 사무라이가 붙은 명칭은 수도 없이 많다.사무라이 햄버거, 사무라이 숙성회, 사무라이 청바지까지 심
◇60여회 실전 한번도 지지않은 검객 무사시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1584(?)~1645년)와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의 사무라이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두 사람 다 일본국민들이 추앙하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추구하 는 삶의 방식이나 무사도를 구현하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미야 모토 무사시가 검을 통해 무사도를 실현하려 했다면 사카모토 료마는 검을 버리고 정치와 협상으로 일본을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 선구자였다.미야모토 무사시는 에도시대 초기에 활약했던 검술가였다. 미 야모토 무사시가 쓴 검술과 전투 기술 일반을 다룬
◇미시마 사건계기로 사무라이 재부각1970년 11월 25일 오전 11시 20분 도쿄 이치가야에 있는 일본 육상자위대 영내에 5명의 사람들이 난입했다. 카키색 군복에 일장기 모양이 그려진 흰 머리띠를 동여매고 일본도를 손에 쥔 일당들은 마스다 가네도시 총감의 면회를 요청하며 총감실에 들이닥쳤다.침입자 중 주동자격인 사람은 놀랍게도 당시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인 미시마 유키오(1925~1970년)였다.미시마 유키오는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호평을 받으며 등단했다. 1949년 으로 데뷔한 이래
◇고사기 속 창세신화 신토의 토대일본의 신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왕실(황실)과 일본창세신화를 알아야 한다. 특히 일본 왕실은 신사와 한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밀착돼 있다. 실제로 일본판 위키피디아에서는 신사를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토의 신앙에 근거한 제사 시설로 황실이나 씨족의 조상신, 위인이나 의사들의 영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고 규정한다.일본 역사서인 에 따르면 일본이라는 섬나라를 만든 신은 일본 왕실(천황가)의 황조신으로 불리는 이자나기다. 이자나기는 지금의 효고현 자리에 아와지 섬을 만들고 이후
◇신사의 신 기능신과 수호신으로 구분일본 신사에 모셔진 신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신사전문가인 아베 마사미치(阿部正路) 쿠니쿠인(國學院)대학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산하(山河)나 풍우(風雨)와 같은 자연현상에도 모든 동식물처럼 생명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森羅萬象)에도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신토의 기본적인 신관”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교수는 더 나아가 신사의 신은 기능신과 수호신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기능신은 인간의 다양한 생활기능을 담당하는 신으로
[금융경제신문=최병일 편집인] 한·일관계는 늘 애증의 관계였다. 좀 더 엄밀하게 따지면 서로에 대한 증오나 혐오의 감정이 더 강할지도 모른다. 두 나라 사이에는 500여 년 전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일제강점기라는 좋지 않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보니 지리상으로는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거리가 있는 나라로 여겨졌다.게다가 일제강점기부터 청산되지 못한 군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등의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현재까지 지속되면서 일본은 우리에게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이는 보수정권이나 진보정권을 가리지 않고 이어진
[금융경제신문=최병일 편집인]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활동에 기초를 둔 사회적 질서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사회과학입니다. 인간이 중심이 되다 보니 경제학의 이면에는 수없이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이번호부터 경제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조금은 가볍게 때로는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는 ‘인문카페에서 만난 경제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주◇그랜드 투어에서 국부론 구상1764년 프랑스 남부 툴루즈의 한 호텔에서 애덤 스미스(1723-1790)는 깊은 시름에 빠졌습니다. 도버 해협을 거쳐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온 지 벌써 7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