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픈블록체인·DID협회 포럼 초청 강연
CBDC 도입 배경은...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과 스테이블코인 등장

[금융경제신문=최진승 기자] 한국은행의 CBDC(중앙은행발행 디지털화폐)에 대한 관심은 2022년 이전까지 소극적이었다. 해외 여러 국가에서 CBDC 테스트를 진행할 때에도 국내 CBDC 도입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해외 국가들, 특히 제3세계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다양한 방식의 전자결제 수단들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2022년을 전후로 한국은행의 CBDC에 대한 입장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였을까.

21일 오픈블록체인·DID협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민경식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팀장이 강연을 진행했다. (사진=금융경제신문)
21일 오픈블록체인·DID협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민경식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디지털정책팀 팀장이 강연을 진행했다. (사진=금융경제신문)

21일 오픈블록체인·DID협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민경식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디지털정책팀 팀장(경제학박사)은 'Web3.0 시대, 디지털 화폐(CBDC) 글로벌 동향과 보안 이슈'를 주제로 웹3.0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한국은행이 CBDC 도입에 나서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민 팀장은 한국은행의 CBDC 도입 배경으로 '빅테크 기업의 시장지배력 및 데이터 집중 현상'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민 팀장에 따르면 CBDC 도입 필요성은 웹3.0의 등장과도 궤를 같이 한다. 구글, 메타, 아마존 등 웹2.0으로 대표되는 거대 인터넷 및 소셜 네트워크 기업들은 독과점 이슈와 함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등 사회적 문제를 수반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웹3.0이라는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이 지적됐다. 한국은행은 2022년 1월 보고서에서 "빅테크 기업의 시장지배력 강화와 개인정보 집중 심화 우려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개방적 공공화폐 인프라의 중요성이 부각된다"고 보고했다.

민 팀장은 한국은행 보고서(2022)를 토대로 CBDC 도입 배경을 4가지로 요약했다. 즉 현금 이용 감소세, 경제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 빅테크 기업의 시장지배력과 데이터 집중,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에 따른 금융경제 여건의 변화가 그것이다.

특히 한국은행은 현금 이용 감소로 인해 안전성과 신뢰성을 갖춘 새로운 지급수단과 이를 가능케 하는 공공인프라 구축을 필요로 한다고 봤다. 또 민간 주도의 지급결제 서비스를 뒷받침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역할도 부각된다고 언급했다. 요컨대 빅테크 기업의 시장지배력과 개인정보 집중에 대응한 개방적 공공화폐 인프라 구축, 그리고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CBDC 도입 필요성이 대두된 셈이다.

◇ CBDC 도입에 따른 변화... 이자 지급이 가능하다?

이날 민경식 팀장은 CBDC의 특징으로 '거래 익명성 여부 선택', '이자 지급', '보유한도 설정', 이용가능시간 조절', '정책목표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발행' 등을 꼽았다. 특히 CBDC로 이자 지급이 가능하다는 점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민 팀장은 "이론적으로 CBDC 이자 지급이 가능하지만, 현재 CBDC를 도입하고 있는 어떤 나라도 이자를 지급하고 있지 않다"라며 "이자 지급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고 지목했다.

민경식 KISA 팀장은 CBDC의 특징으로 '거래 익명성 여부 선택', '이자 지급', '보유한도 설정', 이용가능시간 조절', '정책목표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발행' 등을 꼽았다. (사진=금융경제신문)
민경식 KISA 팀장은 CBDC의 특징으로 '거래 익명성 여부 선택', '이자 지급', '보유한도 설정', 이용가능시간 조절', '정책목표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발행' 등을 꼽았다. (사진=금융경제신문)

전세계 CBDC 현황은 어떨까. 국제결제은행(BIS)이 운영하는 CBDC Tracker에 따르면 2월 현재 대다수의 국가에서 CBDC를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러시아, 중국, 인도, 사우디, 프랑스 등은 이미 파일럿 단계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등과 함께 POC(개념증명) 단계에 있다. 민 팀장은 "현재 디지털 경제 확산과 더불어 다양한 이슈로 CBDC 도입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라며 "특히 미중 패권 경쟁 심화,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지급결제망의 경제 무기화 속에서 대안적 국경 간 결제, 즉 국제적인 결제시스템이 필요해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민 팀장은 러시아의 '디지털 루블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각국의 통화 주권 확보를 위한 대안으로 신흥국과 개도국을 중심으로 CBDC 도입이 빠르게 논의되고 있다"라며 "특히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속에서 국제 결제망을 새롭게 구축함으로써 경제 봉쇄를 강화하려는 분위기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월 기준 전세계 CBDC 추진 현황 (이미지=CBDC Tracker)
2월 기준 전세계 CBDC 추진 현황 (이미지=CBDC Tracker)

지난해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2023.7)에 따르면 향후 10년 내 CBDC를 유통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전세계 중앙은행은 86개 조사대상 가운데 24개에 이른다. 소매형과 도매형을 아울러 CBDC를 검토하고 있는 비율은 93%로 급증했다. CBDC 검토 이유로는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의 현금 대체에 대응하는 차원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60%에 달했다. 민 팀장은 각국 중앙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했다.

CBDC에 관해 긍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기관이 국제통화기금(IMF)이다. IMF는 CBDC에 대해 향후 통화로서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통일된 인프라 미비 등을 이유로 CBDC의 기능 수행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지난해 5월 열린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CBDC는 피할 수 없는 미래지만, 소액결제용 CBDC는 금융시스템의 혁신과 동시에 전례 없는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IMF는 국제결제 상호운용성을 보장하는 플랫폼 개발을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 팀장은 "통화 관련 국제기구 입장에서도 기존의 기득권을 견지하기 위해 경쟁 중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CBDC 추진 현황과 위험 요소는?

지난해 11월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은 'CBDC 활용성 테스트' 세부추진 계획을 발표하면서 디지털화폐 발행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번 테스트에서 3개 기관은 3가지 형태의 통화(예금토큰, 이머니 토큰, 특수 지급 토큰)를 발행하고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성능 테스트에 이어 올해 4분기 중 실거래 테스트를 위한 10만명 이내 일반 이용자들의 참여도 계획하고 있다.

민경식 팀장은 CBDC 추진과 더불어 사이버 보안 이슈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소액결제용 CBDC의 경우 자금 이동 과정에 다수의 주체가 관여하는 만큼 사이버 공격 접점이 늘어날 수 있고, 대량의 데이터 저장에 따른 유출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제도적 기술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 팀장은 "국가별 CBDC 핵심 이슈를 살펴보면 결제 수단으로서 24시간 365일 이용 가능한 상시 시스템으로서 신뢰성을 보장해야 한다라는 게 기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향후 CBDC 도입 추진에 대한 전망도 밝혔다. 민 팀장은 CBDC 도입 관련 주목할 것으로 두 가지를 언급했다.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등장한 지급결제 수단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들의 디지털 금융네트워크 구축에 대한 대응이 그것이다.

이에 글로벌 금융네트워크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민 팀장은 "CBDC 기반 글로벌 금융네트워크의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1944년 이후 유지되어온 브레튼우즈체제가 붕괴되는 상황을 목격할 수도 있다"라며 "중국 위안화 내지 러시아 루블화의 경제권이 만들어질 수 있고 이때 우리나라의 포지셔닝을 생각해야 하는 등 CBDC는 국내 금융권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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