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용 IT컨설팅 전문 AJ&컴퍼니 대표이사 (사진=AJ&컴퍼니 제공)
안재용 IT컨설팅 전문 AJ&컴퍼니 대표이사 (사진=AJ&컴퍼니 제공)

2007년까지는 인터넷에서 회원가입 시 주민등록번호가 유일한 신원인증 수단이었다. 주민등록번호 부여체계는 앞자리는 생년월일, 뒷자리는 성별과 출생지역 등이었는데 마지막 자릿수가 무작위 숫자를 판별하기 위한 검증 코드로, 간단한 수식 연산을 통해 도출해 낼 수 있는 값이다.

이 검증 코드를 계산하는 규칙이 알려지면서 주민등록번호 생성 프로그램이 시중에 돌았고 누구나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1인당 1개의 계정만 허용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분별하게 여러 개의 계정을 만들 수 있었다.

2007년 주민등록번호 대체 수단이 의무화되면서 주민등록번호 생성 프로그램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십 수 년이 지난 아직도 타인의 신원을 도용하거나 악의적 목적으로 인터넷 사업자의 정보보안정책을 피해 가려는 노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해외에는 가짜로 주소, 이름, 핸드폰 번호, 이메일 주소 등을 만들어 주는 사이트가 버젓이 운영되고 있는가 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사람이 풀 수 있는 문제를 테스트하는 캡챠(Captcha)를 대신 풀어주는 유료 서비스도 성행하고 있다.

캡챠를 대신 풀어주는 서비스는 전 세계 저소득국가에서 수천, 수만 명씩 사람을 모아 한 문제를 대신 풀 때마다 1원 미만의 소액을 지급하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2017년에는 인간만 풀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캡챠를 풀어내는 인공지능 프로그램까지 등장해 이슈가 됐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앞으로는 이러한 기술이나 노력이 더욱 고도화될 전망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실제 인물의 얼굴을 동영상이나 사진에 합성하는 딥페이크 기술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고, 컴퓨터가 인간음성을 따라 하는 보이스 클로닝 기술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가수의 목소리를 따라 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앞으로 우리가 특정인의 음성, 사진, 동영상을 보았을 때 이것이 사실인지 의심하게 되는 날이 올 가능성이 크다. 주민등록번호 도용뿐 아니라 얼굴 도용, 음성 도용 더 나아가 필체 도용, 서명 도용, 인감도장 도용과 같은 일들이 현실화되고 말 것이다.

문제는 서명, 필체, 음성, 영상, 인감도장 도용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면 유언장, 계약서, 사건 동영상과 같은 법적 증거들도 유명무실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술의 오용을 막으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벌써 인공지능을 이용해 딥페이크를 탐지하는 기술은 정확도가 99%에 이른다고 한다. 기술이 범죄에 악용될수록 이를 막으려는 기술도 진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조건이라고 봤을 때 이미 인간의 오감으로 탐지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기술을 악용하는 쪽이 더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탐지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인간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가 무분별한 도용으로 대체 수단이 의무화된 것처럼 과연 앞으로 다양한 신원인증 장치들이 더 진보한 형태로 대체될 수 있을지, 기술은 앞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금융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