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곧 한가위도 맞이한다. 그리고 신문사 창간기념일도 매년 이맘때다. 민족의 명절과 회사 기념일을 앞두고 있지만 마음이 그리 편치 않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단지 경기가 어렵다는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 5월 금융경제신문에 입사한 후 4개월여가 지났다. 당시 처음으로 편집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부 토론을 진행한 적이 있다. 올해 취재 방향과 이슈 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편하게 시작된 자리였지만 주제는 제법 무거웠다. 주제는 '금융이란 무엇인가'였다.

사실 평소 기자들끼리 이야기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각자 취재 대상을 만나기 바쁘기에 내부에서 어떤 주제를 정하고 토론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또 각자 분야가 다를 경우 공통된 주제를 잡기도 어려울 뿐더러 자칫 주제가 광범위해질 경우 생산적인 논의보다 변죽만 울리다 끝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다소 무리해서 이 같은 주제를 던진 이유는 금융경제신문이라는 제호 때문이다. 명색이 전문지라는 멍에를 씌운 탓에 각자 맡은 분야는 달라도 최소한의 분모는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창간 26주년을 맞은 금융경제신문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 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 구성원들이 합의한 방향으로 뾰족하게 힘을 실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 우리 신문사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금융이란 한 마디로 '돈의 흐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금전의 융통'을 업으로 하는 것을 뜻한다. 즉 자금을 빌리고 갚는 행위를 중계하는 게 금융이다. 예를 들어 은행, 증권사, 보험사는 시장 주체(예금자, 투자자, 보험자)로부터 돈을 모금해 다른 시장 주체들에게 빌려주는 역할을 하면서 이자수익을 챙긴다.

그간 금융경제신문은 레거시 금융이라 불리는 은행, 증권사, 보험사, 카드사, 캐피탈 등에 대한 취재에 한정해 있었다. 여기에서 주로 현금, 금, 주식, 부동산과 같은 금융자산에 관한 기사를 다뤘다. 금융이 돈의 흐름이라면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재화가 금융자산이고,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 금융권일 것이다. 한 마디로 금융권은 '돈이 모이는 곳'이다. 하지만 과연 이게 다일까?

작금의 돈의 흐름은 대부분 디지털화되어 있다. 이미 카드를 통해 현금을 사용하지 않게 된지 오래다. 여기에 인터넷과 모바일 기반의 핀테크 내지 테크핀이 활성화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이들에 의해 사용되는 화폐가 '전자화폐'다. 근래 암호화폐로 불리던 가상자산도 새롭게 제도권에 편입했다. 이른바 디지털화폐 시대다. 이 시대에 돈의 흐름은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동작하고 있다. 지난 20일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국내 거주자의 해외금융계좌 신고 액수는 186조4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역대 최고치다. 이 가운데 가상자산이 130조8000억원으로 전체 신고액의 70%를 웃돌았다.

취재의 대상과 방향이 바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 신문의 취재대상은 '돈이 모이는 곳'에서 '디지털화폐와 관련 기술을 다루는 곳'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됐다. 즉 기존 금융회사로부터 핀테크, 가상자산 기업으로 범위를 넓힐 필요성이 생겼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금융과 기술의 융합에 대한 이해도를 키워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앞으로 금융과 기술이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한 안목도 키워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국 돈(디지털화폐)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관점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힘쓰는 게 언론의 역할이자 임무일 것이다. 지금도 기술 혁신이라는 미명 하에 선량한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지 않는가.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그의 저서에서 "역사적으로 소수의 정보독점자들은 온갖 현란한 금융상품을 기획해 자본을 끌어모으기를 반복해 왔다"고 지적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어쩌면 그들은 지금도 혁신 기술로 포장된 금융상품을 기획해 또 다시 거품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개인의 탐욕을 자극해 더 큰 탐욕 앞에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깊게 살펴야 할 때다.

이것이 우리 신문의 창간 26주년에 즈음해 한켠으로 마음이 무거운 이유다. 그리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 같아 더 마음이 무겁다. 그만한 능력도 안되면서 욕심만 앞선다는 변명을 덧붙인다. 그저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는 식상한 멘트로 이 상황을 슬쩍 넘어가보려고 한다. 마무리 멘트가 식상하다보니 제목은 좀 거창하게 붙여봤다. 다만 제목이 주는 의미는 곱씹어 볼 만하다. 앞서 언급한 자크 아탈리의 저서 '위기 그리고 그 이후'에서 가져온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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