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편집인의 길위에서 만나는 일본문화 이야기
사케, 깊은 향과 맛 담은 일본술 (하)

지자케로 유명한 효고현 나다고고. (사진=일본 관광청)
지자케로 유명한 효고현 나다고고. (사진=일본 관광청)

◇1000여곳의 양조장에서 다양한 사케 생산 
한국인들은 사케를 정종(正宗)혹은 청주라고 부른다. 사케를 일본어 한자로 정종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정종은 브랜드명이다. 일제강점기 때 부산을 중심으로 사케를 유통하던 회사 중에 정종이라는 표기를 사용한 곳이 있었고 이것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브랜드명이 상품명으로 잘못 굳어진 것이다.

정종이라는 단어를 사케에 사용한 것은 일본 효고현에 있는 사쿠라마사무네(櫻正宗) 양조장의 대표자 야마무라 타자에몬(山邑太左衛門)이 처음이라고 전해진다. 정종(正宗)이라는 한자 자체가 일본어로 발음하면 세이슈우(セイシュウ)가 되며, 청주의 일본어 발음인 세이슈(セイシュ)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 때문에 사케와 유사어로 사용됐다. 

사케는 쌀과 누룩, 효모, 그리고 물로 양조한다. 사케를 만드는 순서는 우리나라 전통주를 만드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 우선 쌀로 고두밥을 짓고 이를 황국균을 접종시킨 찐쌀에 누룩(こうじ, 코지), 효모 등을 물과 섞어 발효시켜 밑술(주모)를 만든다. 이후 누룩과 고두밥, 물을 세번에 나눠 섞으며 발효시킨다. 이후 여과, 살균, 숙성 등의 과정을 거친다. 

2020년 기준으로 일본에서는 약 1000여곳의 사카구라(양조장, 酒藏)가 술을 빚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 내 출하량(또는 생산량) 30위권 정도의 양조장이라면 대규모의 양조장으로 구분하며, 이를 일컬어 내셔널브랜드(ナショナルブランド) 또는 오오테(大手)라고 부른다. 뚜렷한 개성보다는 제품마다 편차가 적고, 안정된 품질의 술을 빚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중소규모의 작은 양조장 또는 작은 양조장에서 만드는 술을 일컬어 지자케(地酒)라고 부른다. 작은 양조장에서 만드는 술이어서 소량만 생산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장점도 있다. 대형 양조장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특별한 시도나 제법(製法) 새롭게 제안된 기술을 적용하기 용이해 내셔널브랜드에 비해 더욱 뚜렷한 개성과 특징을 갖고 있다. 보통 그 지방의 특산물 음식이나 요리와 잘 어울린다. 지자케로 유명한 지역으로는 대담하고 투박한 맛의 사케로 유명한 효고현의 나다가 있다. 깔끔하고 상큼한 맛이 나는 니가타가 대표적이다 

사케에서 쓰는 쌀은 일반 가정집에서 주식으로 먹는 쌀과는 종류가 다르다. 우선 일반 쌀과 도정과정부터 다르다. 일반 쌀은 영양학적인 관점에서 현미 껍질을 되도록 정미를 적게 하지만 사케는 쌀에 포함된 쌀 단백질과 지방을 줄이기 위해 과감하게 도정을 한다. 쌀 단백질과 지방은 술의 잡미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쌀을 얼마나 깎아내고 남았는가를 수치화한 표현이 바로 정미율이다. 이를 일본어로 세이마이부아이(精米步合 정미보합)라고 한다. 

당연히 쌀은 많이 깎으면 깎을수록 술의 맛은 깨끗하고 순수해지는 반면, 술의 생산량은 줄어든다. 또한 다이긴조(大吟釀) 등의 고급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도정률 50% 이하의 쌀을 사용해야 하는데, 쌀을 그 정도까지 깎아내기 위해서는 정미에만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쌀알을 깎아내는 작업 또한 많은 열을 발생시키는데, 그 열로 인해 쌀알이 부서질 수 있으므로 정미와 냉각을 반복하다보면 그렇게 긴 시간이 소요되고 만다. 

사케 종류에 따라 오히려 50%까지 깎아 만든 사케는 강렬하고 거칠며, 65% 밖에 깎지 않은 사케가 더 깔끔하고 드라이한 경우도 있다. 물론 50%대의 사케에서 나는 거친 맛은 단순히 품질이 떨어져서 거친 것과는 좀 다르긴 하다.

도정률이 20%대에 달하면서도 중국 전통주를 연상케 할 만큼 호쾌한 맛을 내는 사케도 있다. 야마구치 우베 지역의 닷사이 같은 경우 도정률이 23%에 달한다. 전국적으로 팔리는 사케 중 최고의 도정률을 자랑하는데 굉장히 부드럽고 맛이 섬세하다. 닷사이는 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하고 있다.

정미율 1%를 자랑하는 특별한 사케도 있다. 야마가타 현 타테노카와 양조장(楯の川酒造)에서 만든 것으로, 야마다니시키(山田錦)의 겉면 99%까지 깎아냈다. 가격은 무려 21만6000엔. 원화로 무려 200만원이 넘는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사케 메이커인 월계관의 준마이 다이긴죠 제품. (사진=월계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사케 메이커인 월계관의 준마이 다이긴죠 제품. (사진=월계관)

◇도정률 높은 것이 고급 사케인 경우 많아 
혼조조는 정미보합 70% 수준의 사케를 말한다. 혼조조는 양조알코올을 첨가한 술을 말한다. 정미율은 70% 이하, 양조알코올의 양은 사용되는 쌀의 총중량의 10%를 넘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 맛이 경쾌하고 시원시원한 목넘김, 화려한 향이 특징이다. 

준마이는 알코올 증류 없이 오직 쌀과 물, 효모, 그리고 맥아만으로 만든 사케의 한 종류다. 준마이 제조에 쓰이는 맥아는 ‘고지’라고 부르며, 식용으로 특별히 숙성시킨 고지를 밥에 흩뿌리면 효소가 배출된다. 준마이는 양조장 고유의 실력과 개성이 가장 짙게 배어나오는 술이기도 하고, 가장 역사가 긴 사케이기도 하다. 대기업, 대형메이커의 준마이슈를 기준으로 하면 부드럽고 은은한 누룩 향과 잡맛이 적고, 감칠맛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특별한 제법으로 빚어냈을 경우는 도쿠베츠준마이슈(特別純米酒)라는 상위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긴조(吟釀)는 역사 자체가 약 100년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술이며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양조한다. 쌀 겉면을 많이 깎아내 극저온에서 저속으로 발효하자 술에서 과일과 같은 화사한 향이 난다는 것이 알려져 지금은 고급 사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양조장의 진짜 실력을 볼 수 있는 술이다. 기본적으로 정미율 60% 이하의 쌀을 사용한다. 여기에 긴조계열 효모를 사용한다. 화사하고 산뜻한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는데 이 향을 긴조향(吟釀香)이라고 한다. 

도정률이 낮으면 쌀이 많이 쓰인 것을 뜻하며, 쌀 도정에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가면 그만큼 가격도 상승한다. 다만 등급이 높다고 반드시 ‘좋은 사케’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준마이도 우수한 품질을 보장하는 표시가 아니다. 유능한 생산자라면 양조용 알코올이나 다른 첨가제를 사용해 풍미를 더 좋게 하거나 목넘김을 매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기타 사케 종류로는 비멸균 사케인 ‘나마자케’가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생사케인데 와인으로 치면 와인 보존제(이산화황)를 넣지 않은 ‘내추럴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결이 거친 천으로 걸러 크리미한 질감을 느낄 수 있는 희뿌연 색감의 ‘니고리자케(니고리)도 있다. 니고리자케는 마치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한 느낌의 맛과 풍미가 느껴진다.

숙성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양조장에서 바로 출시하는 ‘시보리타테’도 있다. 

사케 원료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물 역시 중요하다. 쓰이는 물의 종류에 따라 술의 맛도 천차만별이다. 물은 칼슘이온이나 마그네슘 이온이 얼마나 함유돼 있는 가를 환산해서 경도를 따진다. 보통 물 100㎖ 중 1㎎을 함유할 때 물의 경도를 1도라고 하고 10도 이하의 물을 연수(軟水), 20도 이상의 물을 경수(硬水)라고 한다. 

양조장에서 사케를 제조하는 모습. (사진=일본 관광청)
양조장에서 사케를 제조하는 모습. (사진=일본 관광청)

◇누룩과 효모도 사케 맛을 좌우하는 요소 
연수를 쓰느냐 경수를 쓰느냐에 따라 술의 맛이 현저하게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경수로 빚는 술은 단단하고 강한 주질의 술이, 연수로 빚는 술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주질로 산뜻하고 화사한 향을 살리기에 적합한 술이 탄생한다. 탄산수를 사용하면 상쾌한 느낌의 사케를 만들 수 있다.

사케에서 쓰는 대표적인 명수(名水)로는 효고현의 미야미즈(宮水), 교토(京都)의 어향수(御香水; 고코우스이) 등이 유명하며, 샘물이나 지하수 외에도 빼어난 수질을 자랑하는 강물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도쿠시마(德島)현의 아나부키가와(穴吹川), 미에(三重)현의 스즈카가와(鈴鹿川)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식 사케와 한국의 청주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차이가 누룩의 활용법이다. 청주는 누룩 자체에 누룩곰팡이와 효모 및 몇 가지 균류를 함유하고 있으므로 효모를 따로 투입할 필요가 없으나 사케는 누룩곰팡이 중 인공적으로 한 가지 품종만을 종균해 포도당 분해만을 전담하게 하고 알코올 발효는 한 가지 품종의 효모를 별도로 투입해 진행한다.

누룩보다 중요한 것은 효모다. 술을 제조하는 발효과정에서 가장 필수불가결하게 첨가하는 것이 효모이고 효모는 술맛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쌀을 썼다고 해도 술맛이 전혀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른 효모를 써서 술맛의 기본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보통 사케는 차게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온도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보통 유명한 술의 경우 제품 후면 등에 적정 음용법이 설명돼 있다.

설명이 따로 적혀있지 않을 때는 기본상태에서 마셨을 때(혹은 차게 마셨을 때) 단맛이 강한가를 판단한다. 단맛이 강한 술은 차게, 단맛이 적은 술은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쪽이 좋다.

단맛의 경우 체온에서 멀어질수록 적게 느끼는데, 차게 마실 경우 더 적게 느끼는 편이다. 따라서 상온 혹은 차게 마셨을 때 술이 달다고 느꼈다면 데워 마시면 더더욱 달게 느껴지게 된다. 때문에 단 술은 데워 마시면 과도한 단맛에 부담스러워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차게 마시는 것이 낫다.

이 또한 정해진 틀은 없다. 다양한 사케를 다양한 온도로 먹어보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적정온도를 찾아가는 것이 제대로 사케를 즐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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