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용 IT컨설팅 전문 AJ&컴퍼니 대표이사 (사진=AJ&컴퍼니 제공)
안재용 IT컨설팅 전문 AJ&컴퍼니 대표이사 (사진=AJ&컴퍼니 제공)

지난 17일 전국적으로 정부 행정망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다. 주민등록등본이나 인감증명 발급 같은 행정서비스가 중단되자 은행, 세무, 부동산 업무까지 줄줄이 밀리는 일이 발생했다. 공무원들이 행정망에 접속하려면 별도의 인증시스템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담당하는 '새올'이라는 시스템이 16일 밤 보안패치를 수행한 이후로 장애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간 공공 전산망이 먹통 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2020년 초·중·고 온라인 시스템이 마비돼 일주일 넘게 수백만 학생의 수업에 차질을 빚은 적이 있었고 2021년 코로나 백신 예약 시스템 장애, 2023년 법원 전산망 마비, 초중고 교육행정 시스템 나이스 오류 등 국민들의 공공망에 대한 신뢰가 점점 무너지는 추세다. 일각에선 해킹 공격이 아닌지 의심도 하는 모양이지만 이번에는 그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바야흐로 정보화를 외치기 시작한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세상의 수많은 시스템이 전산을 통해 운영되고 있어 공공, 민간을 가리지 않고 컴퓨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다. 점점 시스템은 고도화 돼가고 있고 이제는 인간의 판단 영역까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번에는 단순히 서류발급이 늦어졌을 뿐이지만, 이대로 가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전산 사고로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치명적인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현재는 공공 행정망 개발에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어 새올 시스템도 중소기업이 개발했다고 한다. 국가안보처럼 긴급 장애 대응 등의 경우만 예외적으로 대기업참여가 허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기술적인 장애 대비 원인 진단과 해결에 능숙한 인력은 민간 대기업이 주로 보유하고 있다. 첫 번째로 뛰어난 고급 인력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포진돼 있다. 두 번째로 대기업이 사람이 몰리는 대규모 처리를 수행해 본 경험이 많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러한 주요 국가시스템에 대기업 참여를 확대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스템의 장애는 필연적이라고들 한다. 시스템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만큼 100%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를 한 번 두 번 겪다 보면 사례를 분석해서 같은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데 오히려 점차 유사한 장애 빈도가 점점 늘고 있다. 더구나 2009년 7.7 디도스 이후로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대응은 14년 동안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사고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한 번 한 번마다 경험을 쌓아 빈도를 줄여가도록 장기적으로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통령 임기 기간인 5년이 아니라 10년, 20년 이상을 내다보고 민간 전문가를 적극 투입해 기술 정책, 대응 정책을 만들어 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옆 나라 일본은 지진으로 전산망이 마비되는 일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해 모든 행정을 종이 서류로 대체하고 있다. 우리도 지금부터 전산 장애에 대해 대책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우리도 다시 종이로 회귀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저작권자 © 금융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