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A, Wright는 '사토시' 아니다... 신원 두고 영국서 재판
Wright, 비트코인 백서 및 데이터베이스 저작권 침해 소송 동시 진행

[금융경제신문=최진승 기자] 크레이그 라이트 박사(Dr Craig Wright)가 비트코인을 설계한 '사토시 나카모토'인지 여부에 관한 재판이 내년 2월 열린다.

크레이그 라이트는 최근까지 엔체인(nChain)에서 비트코인 SV(사토시 비전, BSV) 진영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그는 2015년 미국의 IT전문매체 와이어드에 의해 언론에 처음 노출된 후 비트코인 설계자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를 둘러싼 정체성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크레이그 라이트 박사(DR CRAIG S WRIGHT) (사진=craigwright.net)
크레이그 라이트 박사(DR CRAIG S WRIGHT) (사진=craigwright.net)

그는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지속적인 개인키 서명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여러 '가짜 사토시'들 가운데 한 명으로 취급돼 왔다. 그는 2019년 5월 미국 저작권 사무소(USCO)에 비트코인 백서와 오리지널 코드의 저작권을 등록하면서 암호화폐 업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당시 업계는 '저작권 등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의 행위를 맹비난했다.

크레이그 라이트를 둘러싼 '신원'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재판이 내년 2월 영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간 그와 관련된 재산권 분쟁 및 명예훼손 등 크고 작은 소송들이 이어져 왔지만 그의 '신원 증명'을 두고 법원에서 소송이 벌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달 15일 영국 고등법원은 크레이그 라이트의 '아이덴티티(Identity) 이슈'에 관한 공판 전 심리를 진행했다. 영국 법원에 따르면 이번 재판은 "크레이그 라이트 박사가 가명인 '사토시 나카모토', 즉 2009년 비트코인을 만든 사람인지 여부에 대한 재판"이다.

◇ 크레이그 라이트는 왜 '신원 증명' 소송을 당했나

이번 재판의 시작은 COPA(Crypto Open Patent Alliance)로부터 제기됐다. COPA는 암호화폐 업계를 대표하는 30여개 기업들의 연합체다. 블록(Block), 코인베이스(Coinbase), 마이크로스트레티지(MicroStrategy), 크라켄(Kraken), 코인코드 랩스(Chaincode Labs), 유니스왑(Uniswap) 등이 대표적인 회원사다. 지난해 1월 메타(Meta)도 여기에 합류했다. COPA의 목적은 암호화폐 관련 특허 소송 가능성을 낮추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자유로운 오픈소스 개발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COPA는 지난 2021년 4월 라이트 박사가 사토시가 아니라는 선언을 영국 법원에 청구했다. 지난 20일 COPA는 공식 성명을 통해 "이번 재판(COPA 대 Wright)은 자신이 비트코인 ​​백서의 저자이자 결과적으로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라이트 박사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 다시 불붙은 사토시 논쟁, 법정에서 판가름 날까... 백서 'LaTeX 파일' 등 이슈

이번 재판의 핵심은 라이트 박사가 제출한 문서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하는 데 있다. 제출된 문서들은 과거 그가 비트코인을 설계할 당시부터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문서들이다. 여기엔 2009년 이전에 그가 진행한 비트코인의 초기 프로젝트와 관련해 호주 국세청에 제출한 세금 관련 자료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재판의 준비 절차는 올해 초부터 진행됐다. 영국 고등법원 멜러(MELLOR) 판사에 따르면 지난 4월 라이트 박사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문서 107개를 작성 후 업데이트 했고, 5월 COPA는 이 가운데 진위가 의심스러운 문서 목록을 작성했다. 법의학 전문가들은 해당 문서 분석을 통해 COPA가 지목한 50개 위조 의심 목록 가운데 28개 문서가 조작되거나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전문가들은 라이트 박사가 2009-2011년의 항목을 보여주기 위해 보고한 MYOB(회계 프로그램) 데이터 세트 중 하나가 2020년에 생성됐으며, 다른 MYOB 데이터 세트는 2023년에 생성됐다가 과거 날짜를 적어 넣었다는(Backdated) 의견에 동의했다. MYOB 데이터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비트코인 백서가 처음 발간된 도메인 이름을 라이트 박사가 구매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라이트 박사 측이 추가로 제출한 문서들 가운데 비트코인 백서 편집 파일(LaTeX file)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LaTeX 파일은 Overleaf로 알려진 웹 기반 문서 편집기에서 호스팅되는 파일인데, 이것이 기존 비트코인 백서(PDF 파일)가 배포되기 전 편집 파일로 알려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재판을 맡은 멜러 판사도 이 파일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멜러 판사는 담당자의 말을 인용해 "LaTeX 파일은 고유한 파일이므로 단순히 파일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백서의 저자임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면서 "백서 LaTeX 파일은 신원 문제 재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서술했다.

◇ COPA vs. Wright, 이번 재판의 의미는?

이번 재판은 몇 가지 측면에서 역사적인 재판이 될 전망이다. 먼저 그간 라이트 박사를 둘러싼 사토시 논란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양측의 기싸움도 팽팽하다. 이를 대변하듯 COPA의 주축인 미국 코인베이스 거래소는 내년 1월 10일자로 BSV 상폐를 예고한 상태다.

BSV 측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9월 엔체인은 CEO였던 크리스천 애거 핸슨이 내부 이메일(BSV 후원자인 캘빈 아이어와 라이트 박사 간 주고받은 이메일)을 폭로하며 내홍을 겪었지만, 최근 이번 재판의 법무법인을 교체하면서 전열을 가다듬는 모습이다.

이번 재판은 라이트 박사와 관련된 다른 4가지 소송과도 연관돼 있다. 라이트 박사가 청구인이거나 피고인인 4가지 소송 모두 라이트 박사의 '신원 문제'가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번 재판이 '공동 재판'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따라서 이번 재판의 결과는 비슷한 시기 진행 중인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여기에는 라이트 박사가 비트코인 백서와 코드의 저작권자로서 BTC Core(현재 비트코인 개발자 그룹)에 대한 권리 주장도 포함된다.

이번 재판 결과가 라이트 박사에게 유리한 쪽으로 나올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만약 라이트 박사가 사토시임이 판명날 경우 그간 비트코인 하드포크 논쟁을 치러온 BSV 입장에서 비트코인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라이트 박사 측은 이번 재판에 비트코인의 역사와 오리지날 비트코인으로서 BSV의 정통성을 다룬 많은 분량의 문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다만 멜러 판사는 이번 재판의 핵심이 '신원 증명'이라는 점에서 기술적인 내용들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했다.

당초 재판은 1월 15일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피고측이 추가된 문서들과 데이터의 맥락을 분석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 멜러 판사는 동의했다. 이에 공판 심리를 2주 가량 연기한 1월 29일 또는 2월 5일부터 시작해 3월 5~8일 또는 3월 12~15일 종결하는 일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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