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승 편집국장
최진승 편집국장

지난 11일은 비트코인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날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상품(ETP)의 상장 및 거래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SEC는 지난 수년간 신청된 현물 ETP를 거부해왔기에 이번 결정의 의미는 남달랐다. 관련 업계는 암호화폐(가상자산)의 제도권 진입과 재산적 가치를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 인정받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날 SEC 위원들이 낸 성명서를 보면 승인 결정을 둘러싼 위원들 간 온도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작년 미국 컬럼비아 항소법원에서 이뤄진 SEC의 패소 판결이 이번 현물 ETP 승인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법원은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신탁(GBTC)을 현물 ETF로 전환하려는 그레이스케일의 시도를 거부한 SEC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이날 SEC의 현물 ETP 승인은 법원의 결정에 따른 내부 부담이 컸음을 보여준다. 겐슬러 위원장은 공식 성명에서 "이러한 상황에서 더 충분히 논의된 상황을 바탕으로 가장 지속 가능한 길은 비트코인 현물 ETP 주식의 상장 및 거래를 승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번 조치(현물 ETP 승인)가 암호화폐(가상자산)의 증권 상장 기준을 승인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의 내용들은 SEC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인상을 준다. 승인은 해주되 위험에 따른 책임은 거래소 및 투자자에게 전가하는 발언으로도 읽힌다. 겐슬러 위원장은 성명서 말미에 "비트코인은 주로 랜섬웨어, 돈세탁을 포함한 불법 활동에도 사용되는 투기적이고 변동성이 큰 자산"이라며 "현물 ​​ETP 주식의 상장 및 거래를 승인했지만 비트코인을 승인하거나 지지하지는 않았다"며 위험성을 경고했다.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캐롤라인 크렌쇼(Caroline A. Crenshaw) 위원은 현물 ETP 승인을 반대하는 성명에서 투자자 보호의 취약성을 문제삼았다. 그는 비트코인 현물 ETP에 대해 사기 또는 조작 행위를 방지할 수 없고 투자자 보호가 어렵다는 이유로 이번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크렌쇼 위원은 현물 비트코인의 워시트레이딩(시세조작) 가능성과 채굴 및 보유량이 소수에게 집중돼 있는 구조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따라서 가격변동을 예측할 수 없고 시장에 대한 체계적인 감독이 어렵다고 언급했다.

또 투자자들이 사기와 조작에 노출될 위험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현물 ​​ETP에 대한 주요 규제 기관이 있더라도 대부분은 미국 규제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며 "위원회나 거래소가 특정 사기 및 조작을 식별하더라도 투자자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거의 또는 전혀 없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크렌쇼 위원은 비트코인 현물 ETP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했다. 그는 "비트코인은 P2P 시스템으로 비트코인 투자자는 이미 직접 채굴하거나 지갑을 설정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입할 수 있다"며 비트코인을 기존 금융시스템과 연결하기 위해 왜 그토록 많은 기업들이 에너지를 소비하는지 반문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이번 현물 ETP 승인 결정은 ETP 스폰서와 이들로부터 급여를 받는 법률 회사 및 서비스 제공업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번 결정으로)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투자에 대한 접근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가격을 지탱하기 위해 (기존의) 투자 자체를 새로운 투자자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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