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적정 무역흑자 필수 과도한 ‘원高’ 부작용 커

최근 원화환율의 하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물가안정과 수출경쟁력을 둘러싸고 환율 수준에 대한 논란이 많다.

거시 경제적으로 균형 수준의 원화환율은 얼마인지, 향후 환율정책 운영과 관련하여 유의할 점들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살펴본다.

원·달러 환율 1000원대 위협

지난해 말 달러당 1140원 수준이던 원화환율은 4월초 달러당 1100원선을 하향 돌파한 데 이어 5월 들어서는 달러당 1060원대로 하락하기도 했다.

지난해 원화가 연말 기준으로 2.5% 절상되었던 데 비해, 올 들어서는 4월말까지 원화의 절상 폭이 6.2%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재정위기의 여파로 크게 하락한 후 올해 반등세를 보이고 있는 유로화나 영국 파운드화 등을 제외하면 주요국 통화 가운데 원화의 절상 폭이 가장 큰 상태이다.

특히 아시아 국가 통화들 중에서는 원화가 가장 빠르게 절상되고 있다.

최근의 원화 강세는 미달러화의 약세 흐름에 기인한 바 크다.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미달러화의 가중평균 가치를 나타내주는 달러화지수(Dollar index)는 올들어 4월말까지 7.6% 가량 하락한 상태이다.

2차 양적완화(QE2)로 대표되는 미국의 통화완화 정책이 달러화 약세의 배경이 되고 있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경상수지가 지난 1분기 중 27억20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의 91억6000만달러보다는 크게 줄었지만 지난해 1분기의 2억6000만달러보다는 크게 늘어난 것이다.

양호한 우리경제 상황을 반영해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월 중 글로벌 투자자금의 신흥국 이탈과 궤를 같이해 국내 주식 매도에 나섰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4월 이후에는 다시 매수에 나서고 있다.

4월 중에만 외국인의 국내주식 순매수 규모는 4조4000억원에 달해 1~3월 중의 순매도액을 넘어섰다.

물가상승 압력을 완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정책당국이 원화절상을 용인할 것이라는 기대심리도 최근 원화환율 하락을 가속시키는 요인이다.

올 들어 4%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속되면서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금리인상과 더불어 원화절상이 동원될 것이라는 예상이 외환시장 내에 만연해 있다.

원화환율의 하락세가 빨라지면서, 적정 또는 균형환율 수준과 비교할 때 현재의 원화환율이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 특성상 환율 변화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기 때문이다.

거시경제적으로는 환율 하락이 수입품 가격 하락을 통한 물가안정과 소비자의 구매력 증대라는 긍정적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반면에 환율 하락은 수출 부문의 채산성과 경쟁력 악화를 유발한다.

환율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종합적인 영향을 바탕으로 해 거시 경제적으로 균형을 달성할 수 있는 환율 수준을 추정할 수가 있다.

균형환율을 추정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세 가지 방법을 통해서 균형환율을 추정한 결과에 따르면, 3월 현재 원화환율은 대체로 2.5%~9% 정도 저평가 상태인 것으로 분석된다.

여타 통화의 환율이 변화 없다는 전제하에서 구해진 균형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22~1090원 수준이다.

4월 중 원화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저평가 폭이 추가적으로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여 현재 원화는 거의 균형 수준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된다.

원화 환율 급락 균형수준 도달

기조적 균형환율 수준을 추정할 때 대외균형이 꼭 경상수지나 무역수지의 균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상황과 구조적 요인 등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경상수지 규모가 소폭의 흑자이거나 적자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상수지가 소폭의 흑자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1997년 말 발생한 외환위기 이전 시기에 우리 경제는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상태를 유지했다.

높은 저축률에도 불구하고 투자율이 훨씬 더 높았던 때문이다.

그 결과 고성장을 지속하였지만, 해외차입에 의존한 고성장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바로 외환위기로 드러났다.

4월말 현재 3072억달러 수준으로 늘어난 외환보유액은 비상시에 대비하여 외국인 자금 이탈에 따른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은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경험국이라는 낙인효과(stigma effect)외에도 최근 점증하고 있는 북한리스크의 존재로 인해 작은 내·외부 충격에도 외국인 투자자금이 민감히 반응할 우려가 있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외환보유액을 더 늘려 나갈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외환보유액이 부족해서 당하는 경제위기에 비한다면, 과다하다 싶을 정도의 외환보유액을 유지하기 위해 치르는 비용은 큰 것이 아니다.

GDP 대비 1%와 2%의 경상수지 흑자를 목표로 한다면 1분기중 원화는 각각 3.4%, 0.5% 정도 저평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을 기준으로 한다면 각각 달러당 1084원, 1116원이 균형수준이 된다.

균형환율 추정결과를 종합해 본다면, 현재 원화는 소폭 저평가 상태이거나 거의 균형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화환율 급등으로 큰 폭의 저평가 상태로 반전되었던 원화가 거의 3년여 만에 다시 균형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수출기업의 누려왔던 고환율 효과는 거의 소멸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물가만을 위한 환율하락 안돼

최근 원화환율의 하락세가 빠르게 진행되고 원화가 거의 균형 수준에 접근한 것으로 분석되면서 환율과 관련된 정책 운영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몇 달간 한은 목표치의 상단인 4%를 넘는 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속되면서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더 큰 폭의 원화환율 하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는 등 정부의 환율정책 운영과 관련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향후 환율정책 운영과 관련해 생각해 볼 점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원화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원화절상의 경우 직접적으로 수입품 가격 하락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수출 위축을 통해 수요 압력에 의한 물가 상승 요인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물가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인위적으로까지 보다 더 빠른 원화절상을 유도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최근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은 기본적으로 세계경제 회복세에 따른 유류 및 원자재 수요 증대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높아지는 물가상승 압력은 금리인상으로 대응하는 것이 맞다.

중동 민주화 시위로 빚어진 정정불안이 과도하게 유가를 끌어 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빠른 환율하락을 유도해야 한다면, 일시적으로 유가를 밀어 올렸던 요인이 사라진 후 다시 환율을 높일 수 있느냐의 문제가 대두된다.

환율은 금리와 달리 정책당국이 신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활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고서는 단순한 외환시장 개입만으로 중장기적인 환율 추세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따라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원화환율의 하락 추세를 인위적으로 가속시키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향후에는 환율과 관련해 물가 문제보다는 원화가 빠르게 절상돼 고평가로 전환된다거나 경상수지가 악화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난 글로벌 위기 이후 크게 저평가되었던 원화가 이제는 균형수준에 근접한 상태여서 향후에는 빠르게 고평가로 전환될 우려가 있다.

과거 외환 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험으로 볼 때 원화의 고평가 현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원화의 고평가나 이에 따른 경상수지 악화는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내·외부적인 충격이나 국제 투자자금 흐름의 변화와 결합해 외국인 투자자금의 대규모 이탈과 금융, 경제 혼란이 야기될 수가 있다.

자본시장 어느정도 제한 필수

우리나라처럼 변동환율제도를 유지하면서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있는 나라의 경우에는 고전적인 삼자선택(Trilemma)이라는 정책적 어려움을 피할 수가 없다.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입에 대응해 환율 안정을 위해서는 시장개입이 필요하지만 이에 따른 통화량의 변화는 통화정책의 재량권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반면 통화정책의 재량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입에 따라 환율이 변동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이와 같이 환율안정, 자본자유화, 재량적인 통화정책이라는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는 포기돼야 하는 것이다.

재량적인 통화정책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와 같이 소규모 개방경제인 경우 환율안정이 경제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반면에 총저축률에 비해 낮은 총투자율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재원 확보 수단으로 해외자본의 중요성은 과거에 비해 덜해졌다.

어느 정도의 자본유출입에 대한 규제를 유지함으로써 원화절상 기대심리에 기댄 과도한 해외자본의 유입이 낳을 수 있는 부작용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

과거 2000년대 중반 환율하락에 대한 일방적인 기대 때문에 수출기업들의 선물환 매도가 급증하면서 대외채무가 빠르게 늘어났고, 그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 시에 외환 시장 혼란을 겪은 바 있다.

<자료제공 엘지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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