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박찬영 편집국장

 

‘불조선’을 떠올릴 만큼 올 여름 화두는 무더위와 전기료다. 정부는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에 대한 국민 저항에 부딪히자 ‘7∼9월 누진제 완화’ 카드로 국민들을 달래려고 하고 있다. 18일에는 당ㆍ정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며 누진제 전면개편을 본격 논의했다.

당초 전기료 누진제의 취지는 에너지 과소비를 막고, 전기를 많이 쓰는 부유층에 요금 부담을 더 무겁게 함으로써 저소득층이 저렴한 값에 전기를 쓰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후변화, 가전용품 사용추세 등 전력 소비양상이 크게 변화하면서 서민들도 전기에 관한한 부유층이 될 수 있고 요금폭탄을 맞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정부는 누진제를 허물면 전기 사용량이 늘어 ‘블랙아웃’을 우려하고 있지만 이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옛 노래다. 지난해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16∼2020년 전력 수요가 연평균 3.7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지만 설비 예비율도 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블랙아웃 걱정 해소된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기료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전력=돈이다. 전기료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누진세 폐지 등 전기료를 깎아주면 사용량은 늘어난다. 실제로 1998년 163㎾h에 불과했던 가구당 월평균 전력사용량은 2016년에는 223㎾h로 증가했다. 생활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가구라도 냉장고나 저가형 에어컨 정도는 보유할 정도로 가전용품 사용이 보편화했다. 결국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전기수요 관리를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가나 가정이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지출의 규모를 통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도 에너지 절약은 필수다. “이 더운 날에 에어컨도 못 켜고 살아야 하느냐”라는 볼멘소리도 당연하지만 “전등 하나라도 줄여서 전기를 아껴야한다”는 말의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삶의 질과 지출에 대한 균형점이 틀어져 있다면 당연히 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주택용, 일반용, 교육용, 산업용, 농사용, 가로등 6개 분야다. 그 중 주택용 전기의 비중은 13%에 불과한 반면 산업용 전기는 57%나 된다. 요금은 산업용이 13.1%가 싸다. 한전이 판매하는 산업용 전기의 단가는 1㎾h 당 평균 107.4원이고 가정용은 123.7원이다. 2004년부터 10년간 주택용 전기요금과 산업용 전기요금을 각각 11.4%, 76.2% 인상했지만 여전히 산업용 전기요금이 더 싸다.

전기료 조정 해법은 다각도에서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우선 누진율을 수도료에서 참고할 만하다. 전기료와 상수도료 요금체계가 비슷하다. 물 부족 국가인 데다 댐도 지어야 하는 상황이 석유가 없는 나라에서 발전소를 지어야 하는 상황도 닮았다.

상수도 요금 체계도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 서울시나 제주도의 경우 3개 구간으로 나눠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부과한다. 최하인 1단계와 최고인 3단계의 격차는 2.3배 수준이다. 기본요금은 3000원으로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상수도 요금은 전기요금과 달리 반발은 없다. 가격이 전기료에 비해 싸기도 하지만 누진체계가 납득이 갈 만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시간대별 차등요금제 도입 방식이다. 올 하반기부터 경기도는 300가구를 대상으로 차등요금제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스마트 전력계량기(AMI)를 설치해 실시간 전력 사용량을 분석한 뒤 가구당 전력 소비패턴에 따라 요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시범사업 후 제도를 보완해 내년에는 전국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반응이 좋을 경우 전기요금체계를 확 바꿀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들에게 일정 부분 자가발전을 의무화 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전기를 만드는 곳은 한전에서 분리된 6개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ㆍ남동ㆍ동서ㆍ중부ㆍ서부ㆍ남부발전과 민간발전사들이다. 이 전기를 한전에서 비싸게 주고 사고, 기업과 가정에는 싸게 공급해 적자를 보고 있다. 만약 민간 대기업이 전기를 자체 생산해서 쓰도록 하면 한전의 적자 규모를 줄이고 대기업에선 자가발전의 부담으로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이처럼 전기요금 조정은 누진제 조정 등 한 쪽만 고쳐서 될 일이 아니다. 누진제 요율의 균형도 맞춰야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절전을 위한 정책 등 다양한 방법이 모색 되어야 한다.

이슈가 터지면 늘 그렇듯 전기료 누진제도 누가 피해를 보고 누가 이득 보느냐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 정치권이 앞장서고 있다.

3년 전 이맘때 여당과 정부는 에너지특위를 가동하면서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와 원가 연동제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야당은 부자 감세 논리로 극구 반대해 무산시켰다. “서민 돈으로 재벌 전기료 내 준다”며 반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180도 바뀌었다. 여당도 야당 반대 탓으로 돌리기엔 무책임하다. 국가 전체 에너지수급 대책은 논점에서 벗어나고 누진제만 매달려 내분을 일으키고 있다.

만약 서민을 위해 누진제를 개편 했는데 국가 전체 전력량이 크게 늘어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는 “누가 그 많은 전기를 썼느냐” 가지고 싸울 텐가? 누군가 이럴 때 소리쳐야 한다. “누진제도 중요하지만 전기 절약이 더 중요하다”고… “에어컨 하나 제대로 못키고 사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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