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직구 한마디/손규미 기자

 

최근 한 대형 생보사는 암 진단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한 가입자에게 보험사 자체 의료자문을 받은 결과를 토대로 진단명을 바꾸고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례가 발생했다.

가입자 A씨는 지난 2015년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고, 대학병원씨는 A씨에게 방광 악성 신생물, 이른바 방광암 진단을 받았다. 이로 인해 A씨는 자신이 가입했던 종신 보험 약관에 따라 중대 암 환자가 받을 수 있는 보험금 4000만원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A씨가 중대 암 환자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200만원의 보험금만을 지급했다. 보험사의 판단 근거는 ‘자문의’ 소견이다.

보험사들은 보험사기나 과잉청구를 방지하기 위해 가입자가 제출한 주치의 소견서에 문제의 여지가 있거나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에는 자문의를 통해 의료자문을 구하는 ‘자문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안전장치로 마련된 ‘자문의 제도’가 보험사의 보험금 과소 지급이나 지급 거절의 방편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들이 자체적으로 자문의를 위촉해 운영하는데다, 건당 얼마간의 자문료를 보험사로부터 받기 때문에 진단을 내릴 때 보험사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보험사들은 “일종의 경험치라고도 볼 수 있는데 보험사들은 수많은 고객들의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청구건에 대해서는 보험금 지급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라고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사례처럼 자문의 제도가 악용돼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가입자들은 토로한다. 당사자를 직접 보지도 않고, 보험사가 건네는 자료를 토대로 진단을 내리는 자문의의 소견이 얼마나 믿을만하겠냐는 것.

금융당국은 가입자와 보험사간의 분쟁이 잇따르자 제3의 의료기관 자문 이용 가능 설명을 의무화하고, 금감원 홈페이지 내에 병원 명칭과 전공과목 등의 의료자문 정보를 공시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 금융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공시 자료를 활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금감원이 공시하고 있는 자료 중에 가장 중요한 자문의 명단이 공개가 안 되어 있다”면서 “가입자와의 분쟁 여지와 개인 프라이버시 등의 이유로 공개가 안 된다는데, 환자를 제대로 적법하게 진단한다면 이름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자문의 제도의 투명성에 대해 꼬집었다.

최근 손보협회장으로 취임한 김용덕 회장이 취임식에서 최우선 과제로 ‘소비자 신뢰 회복’을 거론한 것처럼 정체기에 빠진 보험산업에 있어 ‘소비자 신뢰 회복’은 중요한 과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험료를 성실히 납입했음에도 어려움이 닥쳤을 때 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선의의 피해가 발생한다면 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들의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보험산업에 있어서도 소비자 신뢰를 저해하는 적지 않은 문제점이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양쪽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의료기관 지정 및 합리적인 의료 프로세스 마련 등 좀 더 근본적인 해결방안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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