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금융경제신문= 정성화 기자] 코로나19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우리의 통화정책 역사상 전례 없는 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16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5%p 내린 연 0.75%를 적용해, 사상 처음으로 국내 기준금리가 0%대 영역으로 들어섰고, 지난 26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금융시장에 무제한으로 돈을 푸는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를 발표했다.

‘한국판 양적완화’는 오는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매주 화요일 금융기관이 요청한 금액 전액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는 한은의 대표적인 시중 유동성 조절 장치로 한은이 금융사가 보유한 RP를 사면 그만큼 시중에 돈이 풀리는 효과가 발생한다. 반대로 한은이 금융사에 RP를 팔면 시중 자금을 거둬들이는 효과가 있다.

평소에도 한은은 이런 방식으로 금융시장에 현금을 공급해왔지만, RP 매입 한도를 없앤 건 이번이 처음이다. 즉, 시중에 필요한 만큼의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으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사용하지 않았던 사상 초유의 파격적 조치이다.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 없이 공급하기로 결정한 조치는 사실상의 양적완화 조치로 봐도 무방하다”고 밝히면서 한국판 양적완화 조치의 시작을 알렸다.

지난 2월 이미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우려가 시장에서 제기될 때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던 한은이 보수적 기조를 완전히 탈피하고 전례 없던 파격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제라도 한은이 보수적 대응을 탈피하고 이러한 극약 처방을 내놓은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지난 2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했으면 시장 상황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한은의 ‘2월 실기론’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6일 임시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 0.5%p 인하를 단행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판단해도 2월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적절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며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상황에선 금리를 내리는 것보단 취약부문에 대한 애로사항을 들어주는 미시적·선별적 대책이 효과적이었고, 그 때 금리인하를 했다면 시장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실기론을 정면 반박했으나, 한은의 뒤늦은 파격 조치는 2월 당시 시장상황은 안일하게 판단했다는 반증이 됐다.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지난달 20일 "아직 한은이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이 좀 안일하지 않나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다른 주요국에 비해 늦은 점을 꼬집기도 했다.

‘2월 실기론’은 뼈아프지만 결과적으로 이제라도 한은의 파격적인 조치는 환영할 만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시작된 지금의 경제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다르다고 진단한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 부분에서 위기가 시작됐다면, 지금은 전염병의 확산으로 1차적으로 실물 경제가 타격을 받았고 실물 경제 타격이 금융으로 확산된 ‘실물·금융의 복합 위기’라고 주장한다.

미증유의 상황에는 미증유의 대책이 필요하다. 한은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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