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안토니오 (주)다이브 대표.

필자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엔지니어로써 오래 일을 해오고 있다. 이더리움을 활용한 사용자 간 자산 거래 시 필요한 계약 내용을 프로그래밍 코드로 작성했고 이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배포했다.

필자가 작성하고 배포했던 많은 스마트컨트랙트는 아직도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최초 발행 당시 기록한 당사자 간의 계약내용과 똑같이 어떠한 변경도 없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그 계약 내용은 대부분 계약 당사자의 계좌에서 가상자산(암호화폐)을 출금할 때 필요한 조건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출금하는 사람이 계약 당사자가 맞는지 확인하고, 출금 금액이 계약 내용에 의해 계산된 금액인지, 그리고 그 계산 방식은 무엇인지, 만약 제 3자의 확인이 필요한지 등의 조건들이다.

사실 실제 스마트컨트랙트에는 이보다 더 많고 복잡한 계약 내용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이 모든 당사자와 이해관계자들 간의 계약 내용이 공증되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면 계약에 대한 신뢰성은 매우 높은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공개되어 있는 그 계약을 아무도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향후 토큰증권 발행(STO) 산업의 신뢰성을 그대로 가져오지는 못할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금융상품의 불완전 판매는 대부분 계약 당사자가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매우 단순한 금융상품이라 할지라도 예외 조항들은 항상 존재하고 계약자는 이를 잘 숙지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경우 이와 유사한 펫 보험에 대한 경험이 있다. 특정 질병에 대해서 치료비는 청구할 수 있었지만 한번에 청구할 수 있는 치료비의 최대 금액이 너무나도 작아 추가 치료비를 훨씬 더 많이 지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블록체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금융생활 전반에서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향후 STO 산업이 좀 더 빠르게 확산되려면 블록체인에 새겨진 이 복잡한 계약 내용을 누구에게나 쉽게 번역해 줄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제 3자에 의한 서비스가 필요한 상황이다.

토큰증권은 분산원장 방식을 활용해 기존에 없던 신탁상품이나 투자계약을 토큰 형태로 발행하는 것이다. 분산원장은 제 3자에 의한 중개를 제거하기 위해 고안된 방식이다. 하지만 토큰증권이 발행된 후에 계약 내용을 확인해줄 또 다른 제 3자가 필요하다는 점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필자 소개

(주)다이브의 김안토니오 대표는 2014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공지능 기업을 창업하여 운영한 경험이 있고 국내 유수의 인공지능 회사에서 CTO를 엮임했다. 현재 다수의 미디어 매체에서 인공지능, 메타버스,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칼럼을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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