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편집인의 길위에서 만나는 일본문화 이야기
신사, 일본인을 담은 블랙박스 (상)

일본 최초의 신사인 우지가미 신사. (사진=최병일 편집인)
일본 최초의 신사인 우지가미 신사. (사진=최병일 편집인)

[금융경제신문=최병일 편집인] 한·일관계는 늘 애증의 관계였다. 좀 더 엄밀하게 따지면 서로에 대한 증오나 혐오의 감정이 더 강할지도 모른다. 두 나라 사이에는 500여 년 전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일제강점기라는 좋지 않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보니 지리상으로는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거리가 있는 나라로 여겨졌다.

게다가 일제강점기부터 청산되지 못한 군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등의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현재까지 지속되면서 일본은 우리에게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이는 보수정권이나 진보정권을 가리지 않고 이어진 기조였다. 그러다 최근 한·미·일 안보동맹이 강조되면서 긴장관계 일색이었던 한·일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일부에서 ‘조건없는 투항’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윤석열 정권은 예전 정권에 비해 일본에 대한 관계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한·일관계를 접근하는데 있어서 현정권을 비롯해 여타의 모든 정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과연 일본은 어떤 나라고 일본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 사실이다. 혹 일본인들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는 사람들조차 일본인들은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가 다르다고 말하는 정도에 그친다.

다테마에는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마음(겉마음), 혼네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속내(속마음)다.

세계 어느나라 사람들도 조금씩은 표리부동한 면이 있지만, 일본은 혼네와 다테마에가 고유의 문화, 국민성으로 자리잡을 정도로 확실한 편이다.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독특한 문화가 자리잡은 것은 일본의 중세 역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오닌(일본 연호 1467~1468)의 난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1467년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지방 다이묘들이 교토에서 항쟁을 벌인 오닌의 난이 일어났다. 무로마치 막부가 교토에서 축출되는 1567년까지 무려 백년 동안 교토와 오사카 전역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졌다. 이 시기에는 누가 적인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항상 남을 시기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일상화됐다. 가족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풀지 않거나 모욕을 당하지 않도록 항상 타인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서로 붕우(朋友)로서 맹약을 맺으면 친구가 돼 목숨까지 버렸으나, 마음의 균열이 생기면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됐다. 또한 조금이라도 불만이 쌓이면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술자리에서도 경계심을 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일상화되다보니 함부로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다.

이때의 역사적 경험이 일본인들의 DNA에 각인돼서인지 현대를 사는 일본인들도 혼네를 밝히는 것을 꺼려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만으로 일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혼네와 다테마에는 일본인들의 성격적 특질 중 한 부분이지만 일본인을 규정짓는 모든 것일 수는 없다.

일본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보다 입체적으로 일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해묵을 감정을 털어내고 진정한 화해와 협력으로 가기 위한 지름길은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에서 시작될 것이다.

지금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감정적 접근보다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적 연관성이 많으면서도 때로는 화성인과 금성인처럼 간격이 있는 일본인들의 속마음(혼네)을 문화적 키워드를 통해 탐색해보고자 한다.

◇일본 전국에 신사 8만8000여개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풍경의 절반은 신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명승지마다 절(사찰)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절이 대부분 산속에 있는 것과는 달리 산사는 마을 중심이나 숲에 있다는 점이다.

일본 여행이나 취재 중에 수도 없이 많은 산사를 만났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신사를 꼽으라면 우지가미신사, 이즈모타이샤, 이세신궁, 야스쿠니 신사일 것이다. 언급한 네 개의 신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신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신사는 일본의 민속신앙인 신토(神道)의 신을 모시는 종교시설이다. 2010년대 기준으로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일본 내 신사는 약 8만8000곳에 이르지만,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신사들까지 포함하면 20만~30만 군데나 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신사는 원래 모리(森)라고 불렸다고 한다. 모리는 일본말로 ‘숲’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일본의 소설에서도 숲에 있는 신사를 많이 언급하고 있다. 신사에 대한 이미지는 천차만별이다. 고향의 품처럼 그리운 것이거나 으스스한 것일 수도 있다. 신사가 낭만적인 소설 속 이미지에도 호러 소설이나 영화에도 나오는 것은 신사의 이미지가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명작 애니 '너의 이름은'은 몸이 바뀐다는 중심 모티브 자체가 몸에서 혼이 빠져나온다는 신토적 관념을 전제로 하고 있는 등 일본 신토의 핵심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명작 애니 '너의 이름은'은 몸이 바뀐다는 중심 모티브 자체가 몸에서 혼이 빠져나온다는 신토적 관념을 전제로 하고 있는 등 일본 신토의 핵심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그중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신성으로 떠오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은 신사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시골에 사는 소녀 미츠하가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신기한 꿈을 꾼 뒤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너의 이름은>은 표면적으로는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미증유의 재난으로 고통을 겪었던 일본인들이 “만약 이를 되돌릴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일본인들 속에 내재돼 있는 감정을 건드려서인지 일본 내에서 흥행 1위를 기록했고 글로벌 흥행 1억달러 이상 수입을 올린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중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려 386만3672명이 관람해 당시 공식 상영된 일본 영화 중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잘 만든 SF 형식의 재난영화로 생각하겠지만 박규태 한양대 일본학과 교수는 <너의 이름은>이라는 작품이 일본 신토의 핵심을 가장 잘 묘사한 서브컬처 작품이라고 말한다. 몸이 바뀐다는 중심 모티브 자체가 몸에서 혼이 빠져나온다는 신토적 관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주요무대도 신사다. 여주인공 미츠하는 미야미즈(宮水) 신사 가문에서 태어난 무녀로 설정돼 있다. 애니메이션 속 붉은 매듭 무스비도 신토적인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무스비는 ‘땅의 수호신’이다. 즉 무스비라는 신(가미)이 인간과의 관계도 묶어주고 사람과 사물도 묶어준다. 박 교수는 <너의 이름은>의 이름이 전통을 잃어버린 일본의 이름이 아닐까 추측했다.

본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 도자기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도공 이삼평을 기리는 도잔신사. 후쿠오카부 사가현에 있다. (사진=최병일 편집인)
본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 도자기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도공 이삼평을 기리는 도잔신사. 후쿠오카부 사가현에 있다. (사진=최병일 편집인)

◇신이 깃든 특정지역을 만든게 기원

일본 전국에 무려 8만개가 넘는 신사가 있지만 원래 초기부터 현재와 같은 건물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신사의 시원이 정령주의에 기초했던 만큼 고대 일본인들은 큰나무나 산 혹은 바위, 바람과 번개 등에 신이 깃들어 있다하여 신성시했다. 바람과 번개는 형체를 띄지 않았기 때문에 신이 머무는 산에서 제사를 지낼 때 상록수를 심고 울타리를 두르거나(히모로기) 큰 돌을 세워 원형으로 두른 특정 지역(이와사카)을 만들었다. 이것이 발전해 신사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 최초의 신사는 교토 인근 우지 지역에 있는 우지가미(氏神) 신사다. 창건연대는 헤이안 시대 후기(1068~1192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 나라(奈良)문화재 연구소 등의 조사에 의하면 1060년경 건축인 것으로 판명이 났다. 본전은 3채의 내전을 일렬로 늘어놓고 이와다부키(노송나무 껍질 지붕)의 지붕으로 둘러 씌워 마치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게 했다. 배전은 카마쿠라 시대(1185~1333)초의 것으로 추정되며 두 건물 모두 일본의 국보로 전해지고 있다. 우지가미 신사는 이름 그대로 씨(氏)의 신(神) 즉 씨족의 조상신이 모셔졌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파워스폿으로 인기 높기도

일본인이 신사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신사협회에서 지난 2019년 신사를 찾은 일본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신사방문 목적을 설문조사(중복응답)한 내용에 따르면 86%의 일본인이 하츠미를 위해 신사를 방문한다고 답했다. 하츠미는 정월에 의례적으로 가는 신사 참배를 의미한다. 우리 식으로 풀이하자면 한국인들이 1월 1일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보신각으로 모이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신사를 찾는다는 것이다. 48.9%는 관광명소를 순례하다 찾는다고 답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주요 명승지에는 빠짐없이 신사가 있거나 신사 자체가 관광명소이기 때문에 찾는다는 것이다. 32.8%는 액막이 혹은 액땜을 하기 위해 신사를 찾는다. 비슷한 이유로 28.2%의 사람들이 부적을 구입하기 위해 신사를 들르기도 한다.

신사가 워낙 생활속에 스며들어서 종교시설로 생각하는 것보다 결혼식이나 신년초하루, 성인식, 우리나라의 추석에 해당한 오봉 등 일본의 주요 명절이나 행사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찾는 곳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신사가 파워스폿이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도 많다.

일본인들에게 파워스폿은 영적인 힘을 얻거나 에너지를 얻는 곳을 의미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특별한 힘이 작용하는 곳 혹은 생명력이 강한 곳을 가리킨다. 파워스폿을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기(氣)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일본인들에게 파워스폿은 기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신비한 힘이기도 하고 병을 낫게 해주는 힘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파워스폿의 대표적인 곳은 대부분 신토와 관련이 있다. 후지산, 와카야마현의 숲과 해안선 ‘나치노타키’라는 이름의 133m의 웅장한 폭포 등이다. 이 두 곳은 신토가 자연을 숭배하는 애니미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유명 파워스폿도 시마네(島根)현의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나 교토의 키후네 신사(貴船神社) 미에현의 이세신궁伊勢神宮)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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