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편집인의 길위에서 만나는 일본문화 이야기
신사, 일본인을 담은 블랙박스 (중)

시즈오카의 센겐신사는 일본의 상징 같은 후지산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사진=최병일 편집인)
시즈오카의 센겐신사는 일본의 상징 같은 후지산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사진=최병일 편집인)

◇신사의 신 기능신과 수호신으로 구분

일본 신사에 모셔진 신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신사전문가인 아베 마사미치(阿部正路) 쿠니쿠인(國學院)대학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산하(山河)나 풍우(風雨)와 같은 자연현상에도 모든 동식물처럼 생명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森羅萬象)에도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신토의 기본적인 신관”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교수는 더 나아가 신사의 신은 기능신과 수호신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기능신은 인간의 다양한 생활기능을 담당하는 신으로 그 안에는 농업·수렵·어업·상업·공업·항해·혼인·출산·역병·의약·죽음·전쟁·문화·운명신이 있다. 수호신은 개인의 수호신으로부터 씨족·마을·민족·국가 수호신 등 공동체 곳곳에 스며 있다.

아베 교수의 말처럼 신사에서 받들고 있는 신은 대단히 다양하다.

자연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정령주의 종교답게 후지산 등의 이름난 산과 숲, 폭포, 바위 등을 신격화한 경우가 많다. 후지산을 모시는 시즈오카의 센겐신사, 아사마 신사가 대표적이다. 높이 45m 정도의 큰 바위를 모시는 신사도 있다. 미에현 무마노시에 있는 하나노이와야신사(花の窟神社)인데 신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바위 정상에 줄을 둘러 밧줄을 걸친 후 제사를 지낸다.

신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신앙하는 신은 조상신이다. 사실 일본인들은 신사를 참배할 때 자기가 지금 예배드리는 대상이 어떤 신인지 그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중요한 것은 신이 현실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복덕을 가져다주느냐에 있지 그 신의 이름이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일본인들이다. 그러니 신의 이미지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토는 신이라는 관념적인 존재를 믿지만 대단히 현세적인 종교다. 지금 현재 즐겁고 감사하게 살면 되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거나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담당하는 종교는 불교다.

일본인들이 정월이나 주요명절, 성인식, 결혼식을 신사에서 치르지만 장례식은 신토에서 치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례식은 여하한 경우에도 절에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메이지신궁에 봉물로 바쳐진 사케들. (사진=픽사베이)
메이지신궁에 봉물로 바쳐진 사케들. (사진=픽사베이)

신도의 신은 실상 인간과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사후 혹은 드물게 생전에도 신으로 숭배된다. 교토의 토요쿠니 신사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받들고 있다. 도쿄의 메이지 신궁은 일본의 122대 천황인 메이지를 모신 신사다. 일본 제국주의와 일왕(천황)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자들이 각각 신이 되어 제사를 지내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제국주의적 야욕과 종교이념이 잘못 결합한 경우다.

신토에서는 특별히 신통력이 있는 인물이 아니라면 대부분 깊은 원한을 가진 인물이 신이 되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난다. 일종의 원귀가 신이 되는 으스스한 스토리는 일본인들만의 독특한 정신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흥행했던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는 원령이 신토의 신이 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린 작품이다. 원령공주 ‘산’은 숲을 파괴하는 인간에 대해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다. 영화 말미에 원령공주 산이 끝내 인간들을 용서할 수 없어서 숲으로 가는 것은 신사의 신이 되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본인들이 입시 철에 즐겨 찾는 기타노 신사(기타노 텐만구)의 주제 신이 바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라는 원령신이다. 미치자네는 관료나 학자로서 대업을 쌓은 것도 아닌데 오늘날까지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후 재앙을 가져오는 원령으로 위력을 떨쳤기 때문이다. 그가 사망한 이후 교토에서는 홍수와 역병이 창궐했다. 황실가에서도 의문의 죽음이 발생하자 947년 무녀 다지히노 아야코가 기타노에 사당을 건립하고 미치자네를 천신으로 모셨다고 한다.

원령이 신이 되는 과정을 그린 지브리의 명작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 (사진=다음 영화)
원령이 신이 되는 과정을 그린 지브리의 명작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 (사진=다음 영화)

◇에디슨과 존레논도 신으로 모시기도

다른 종교의 신이 신토와 결합해 모셔지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인도의 다키니 여신이다. 다키니는 불교와 힌두교에 나오는 야차녀(夜叉女)다. 인육이나 인간의 정기를 먹고 사는 무서운 존재인데 비로자나불의 교화를 받아 불교로 귀의했다고 한다. 이후 신토의 농업신인 이나리 오미카미와 융합해서 가미(신)가 됐다. 교토 야사카 신사의 주신인 우두천왕(牛頭天王)은 이름 그대로 소의 머리 모양을 한 독특한 신이다. 우두천황은 인도 석가모니 부처가 머물던 사찰인 기원정사를 지키던 호법신에서 왔다고 한다. 심지어 에디슨이나 영국 록밴드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을 모시는 신사도 있다고 한다.

일본 신토의 신중 신라와 백제에서 넘어온 도래인들의 수도 적지 않다. 장보고로 추정되는 신라명신을 모시는 시라히게 신사가 기후현에만 68개 아이치현에 10개나 있다. 고구려 멸망 후 일본으로 도망친 고마노 잣코(高麗若光)를 신으로 모시는 사이타마현의 고마신사도 도래계 신을 믿는 경우다.

일본 신토의 주신은 ‘태양의 여신’으로 불리는 아마테라스다. 아마테라스는 일본 신화, 신토의 주신으로 태양의 여신이다. 일본 황실의 황조신(皇祖神)이자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의 의인화로도 여겨진다. 그녀는 신들의 군주로서, 일본 신화 세계관에서 천상의 나라이자 신들과 영혼의 영역인 타카마가하라를 다스린다.

아마테라스는 이세신이라고도 부르는데 아마테라스를 주신으로 모시는 신사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이세신궁이다. 무로마치 막부 시대(1338~1573) 때는 모든 일본인들이 일생에 한 번쯤은 아마테라스를 모신 이세신궁에 참배해야 한다는 이른바 이세 신앙이 국가적으로 형성됐다. 실제로 집단 참배가 많을 때는 무려 500만명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 이세마와리라고 하는데 이슬람교도들이 일생의 꼭 한 번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순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신토를 믿는 일본인들은 이세신궁을 참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소원중 하나로 꼽을 정도다.

아마테라스가 일본의 정신적 구심점이라면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신은 하치만 신(八幡神)이다. 8만개나 되는 신사의 무려 25%에 달하는 신사에서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하치만 신의 정체를 두고 일본 내에서도 여러 가지 추론이 오가고 있지만 일본의 15대 일왕(천황)인 오진 천황(応神天皇)과 동일시됐다. 오진 천황은 일본의 최초의 천황이라고 전해진다. 15대 천황인데도 일본 최초의 천황으로 전해지는 것은 초대 천황인 진무천황부터 14대 주아이 천황까지 실존한 인물이 아닌 신화 속의 인물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10대 스진 천황부터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세에는 전쟁의 신 하치만으로 신격화돼 숭배의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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