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센트로 김택종 변호사. (사진=센트로 제공)
법무법인 센트로 김택종 변호사. (사진=센트로 제공)

자신이 재개발 재건축 사업의 조합원이 아니라면 조금 생소한 이야기일 것 같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재개발 재건축 사업의 자금 조달 방식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겠다.

재개발 재건축, 통틀어 정비사업이라고 하는데, 정비사업은 넓은 구역의 낡은 건물을 허물고 아파트와 같이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므로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혼자 사는 집이 낡아 수리하거나 새로 지으려면 당연히 집 주인이 돈을 내고 공사를 하겠지만, 정비사업은 집 주인들이 돈을 십시일반 모아 진행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장 정비사업을 할지말지부터 다툼이 있는데, 돈을 걷는다고 하면 아무도 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비사업은 일단 남의 돈을 빌린다. 처음에는 정비구역 집 주인들 일부가 모여 ‘(가칭)추진위원회’라는 것으로 정비사업을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정비업체, 설계업체, 법무법인, 법무사법인, 회계법인, 감정평가법인 등 많은 용역업체들이 (가칭)추진위원회와 접촉을 시도한다. 용역업체들은 나중에 얻을 큰 이익을 기대하며 무상으로 용역을 제공하거나 용역비 지급을 유예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 초기 사업자금을 빌려주는 것은 주로 정비업체의 몫이다. 그리고 정비사업조합(간단히 ‘조합’이라 한다)이 설립되어 시공자가 선정되면, 사업자금을 빌려주는 것은 시공사의 몫이 된다. 시공사로부터 직접 사업자금을 빌리거나 시공사를 보증인으로 내세워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으로부터 사업자금을 빌리게 된다. 이때 초기에 사업자금을 빌려주었거나 일시적으로 무료 봉사하였던 용역업체들은 빌려준 돈을 돌려받고 용역비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시공사는 조합이 새집을 팔고 받은 돈으로 빌려준 사업비를 돌려받고, 공사대금을 받게 된다.

조합은 이처럼 시공사가 선정될 경우 비로소 재정적으로 안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조합은 입찰을 통해 시공사를 선정하는데, 시공사들이 입찰을 위해 조합에 지급하는 입찰보증금이, 조합이 처음으로 빌리는 사업자금이 된다. 조합이 입찰공고를 할 때, 선정된 시공사의 입찰보증금은 사업자금을 빌려준 것으로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시공사는 이를 수용하겠다는 전제로 입찰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공사가 입찰하면서 제출하는 사업에 관한 제안서에는 사업자금 대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입찰보증금 외에도 추가로 사업자금 빌려줄 것을 예정하고 있고, 시공사가 조합과 공사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업자금 대여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하여 금전소비대차계약서도 작성하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거창하게 말하자면 조합의 자금차입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간단히 ‘도시정비법’이라 한다)은 최근 제111조의2 자금차입의 신고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여, 위 규정이 시행된 2022. 12. 11. 이후 추진위원회나 조합이 자금을 차입하면 30일 내로 관할청에 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인 신고방법을 정한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87조의2를 보면, 상대방, 차입일, 차입액, 이자율, 상환기한 및 상황방법을 기재한 자금차입 계약서의 사본을 관할 시장, 군수등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돈을 빌린다’라고 하는 말을 법률적으로 분석하면,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는 ‘돈을 빌리기로 하는 약속’이고, 둘째는 실제로 그에 따라 ‘돈을 주고받는 행위’이다. 둘 중에 어느 한 요소라도 갖추지 못하면 법률적으로 ‘돈을 빌렸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돈을 빌린다는 말 없이 돈을 주고받았다면, 거져 준 것이거나 돈을 준 사람 입에서 아쉬운 소리라도 나올 것이다. 그리고 돈을 빌리기로 얘기는 됐으나 돈을 주고받지 않았다면 돈을 빌리기로 한 사람이 도대체 언제 돈을 빌려줄 것이냐고 보챌 수도 있다.

도시정비법이 정한 자금차입의 신고도 이와 같은 상식에 기초하고 있다. 즉,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자금차입의 사실이 인정되어야 하므로, 법적으로 돈을 빌렸다는 약속의 증거로서 계약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고, 도시정비법 제111조의2에는 명시적으로 ‘자금을 차입한 때’에, 즉 돈을 주고받은 뒤 자금차입 신고를 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금차입에 관해 계약서가 없거나, 빌리기로 한 돈의 일부만 주고받은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법은 이러한 경우까지 고민하여 자세히 정하고 있지는 않다.

한편, 자금차입 신고를 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자금차입 신고에 관한 규정을 가급적 엄격하게 새겨야 할 것이다.

법 문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자면, 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다면 계약서 사본을 제출할 수 없으므로 신고를 할 수 없을 것이고, 빌리기로 한 돈 일부만 받았다면 아직 자금차입을 모두 하였다고 할 수 없고, 일부만 신고를 한다면 계약서 내용과 차입금액에 차이가 있어 허위 신고가 될 수 있으므로 이 역시 신고를 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시공사가 입찰보증금을 조합에게 빌려주는 상황이 대개 이와 같다. 즉,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입찰보증금이 먼저 조합에 지급된 이후에 시공사가 선정되면 구체적인 자금차입의 내용을 정하여 금전소비대차계약서가 작성된다. 그리고 사업비가 유이자이기 때문에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입찰보증금을 일시에 빌리는 것은 이자 때문에 조합의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일부를 돌려주고 순차적으로 빌리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정비사업조합이 시공사의 입찰보증금을 자금차입으로 전환하였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도시정비법 제111조의2에 따라 자금차입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조합과 시공사 사이에 자금차입의 규모나 조건이 모두 확정되어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계약서가 작성되고 그에 따라 돈을 주고받았으면 그때부터 30일 내에 관할청에 신고해야 하는 것이다.

도시정비법 제111조의2는 비교적 최근에 개정된 중요한 규정이므로 정비사업 관련자들이 놓치기 쉽고 아직 사례들이 많지 않아 신고를 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때는 관할청에 문의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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